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김한 JB금융그룹 회장 겸 전북은행장(60)은 수행비서가 없다. 정확히는 수행비서가 있지만 같이 다니지 않는다고 해야 맞다. 은행에 들어올 정도로 능력있는 고급 인력이 회장 ‘수발’이나 들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에서다. “능력있는 직원이 일을 하면서 전문성을 쌓을 기회를 뺏으면 안 됩니다. 오랜 시간 비서로 의전업무만 전담하게 되면 나중에 큰 역할을 못할 수 있습니다.”

해외 출장도 혼자 간다. 미국에서 공부한 만큼 영어 소통에 불편함이 없고, 둘이서 움직이는 것보다 혼자 이동하는 게 편하다는 것이다. 업무를 할 때나 의사결정할 때도 격식이나 체면보다 실용을 중시한다. 말단부터 간부들까지 김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좋아하는 이유다. 의전을 중시하는 등 보수적인 관행이 곳곳에 배어 있는 은행에서 김 회장의 다소 파격적인 행보가 JB금융을 괄목상대할 정도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회장은 “직원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율성과 기회를 주고 있는 만큼 열정을 갖고 일하면 보람을 찾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열정이 있으면 몰입이 가능하고 요즘처럼 경쟁이 심할 때 몰입해야 이길 수 있다는 게 삶의 철학이다. 20세기 최고의 극작가로 꼽히는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적힌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문구를 늘 되새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칭찬이 조직 역량 최대화의 핵심”

임직원에게 항상 열정을 주문하면서도 영업에 드라이브를 걸진 않는다. 웬만한 금융회사가 다 하는 것처럼 직원들에게 목표를 할당하고 자산을 늘리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2009년 7조2500억원에 그쳤던 전북은행의 자산이 13조원 규모로 불어났다. 김 행장이 2010년 취임한 뒤 일군 성과다. 작년에는 JB금융지주를 출범, 종합금융그룹의 기반을 닦았다. 올해는 광주은행 인수에 성공했다. 인수작업이 다음달 마무리되면 18조원 남짓한 JB금융그룹의 자산은 40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무리한 영업 독려를 하지 않고도 자산이 불어나는 비결로 김 회장은 칭찬을 꼽는다. 격려와 칭찬이 조직의 사기를 북돋운다고 확신한다. “은행은 정해진 패턴과 순서에 따라 일하는 조직이고 직원들이 잘 훈련돼 있어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며 “칭찬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사로서의 덕목은 동부그룹에서 같이 근무했던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에게서 배웠다. 그는 “황 전 회장은 당시 부하들에게 권한을 주며 간섭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는 대부분 좋았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업무를 더 많이 아는데도 각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가맥파티’로 선입견을 날리다

전북은행장으로 부임할 당시 은행 직원들이 김 회장에게 다소 위화감과 선입견을 가졌다고 한다. 최대주주의 인척인 데다 학벌이나 이력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JB금융의 대주주는 주식 12.05%를 보유한 삼양바이오팜이다. 이 회사는 삼양홀딩스의 자회사이고, 김 회장은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주의 손자다.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장남이도 한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기계공학과)를 거쳐 미국 예일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30대에 대형 증권사 임원을 맡는 등 경력도 화려하다.

‘우리와는 다른 부류’라며 경계하던 직원들의 의구심은 취임 직후부터 격의 없는 대화와 소통이 시작되자 금방 수그러들었다. ‘가맥 파티’가 한몫했다. ‘가맥’은 ‘가게 맥주집’을 일컫는 말로 전북은행 본점이 있는 전주시만의 독특한 주점문화다. 1980년대 초반 전주 경원동 일대 작은 가게들이 탁자와 의자 몇 개만 놓고 맥주를 팔기 시작하면서 가맥 문화가 만들어졌다. 갑오징어나 황태, 계란말이, 땅콩 등이 안주로 나온다. 김 회장은 “모든 직원을 1년에 한 번 이상 가맥집에서 만난다”며 “가맥 파티를 포함해 누구라도 한 해에 네댓 번은 회장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기회를 주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결재 과정을 크게 단축하는 등 업무처리도 간소화했다. 또 1주일에 한 차례씩 하던 의례적인 임원회의를 없앴다. 대신 이슈를 중심으로 토론식 임원회의를 한다. 직원들도 부서장 주재로 금요일 오후 4시 이후 업무 관련 자유주제를 선정, 토론할 때가 많다. 그는 “경영자는 자신의 철학과 영업 방향, 전략 등을 임원뿐 아니라 가장 말단에 있는 직원들과도 공유해야 한다”며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납득해야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서민 금융 전문회사’ 목표

김 회장의 취미는 암벽등반이다. 에베레스트 등반에 도전하는 게 꿈일 정도다. 외유내강형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다. 암벽등반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도전할 수 있어서다. 그는 “암벽등반을 할 때 위로 올려다 보이는 암벽의 각도는 체감상 90도지만 실제로는 60도 미만”이라며 “지레 겁먹지 않고 등반에 나서는 도전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회사생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어려워 보여도 막상 몸으로 부딪치고 버티면 답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광주은행 인수에 성공한 것도 이런 도전정신 덕분이다.

JB금융은 다른 지방은행보다 사업 기반이 취약하다. 근거지인 전북에 이렇다 할 제조업체가 없는 탓이다. JB금융 대신 농협은행과 거래하는 지역주민도 많다. 광주은행 인수는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김 회장은 회사의 덩치를 키우는 것은 경영목표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대기업 금융에 욕심을 내 외형을 불리기보다 강점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과 서민금융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JB금융을 국내에서 가장 유연한 사고를 하는 조직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고객의 상황과 여건 등을 고려해 맞춤형 자금을 제공하는 융통성 있는 금융사로 자리매김하는 게 꿈입니다.”

김한 회장 프로필

△1954 년 서울 출생 △1972년 경기고 졸업 △1977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1979년 삼일회계법인 입사 △1984년 동부그룹 미국 현지법인 사장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 기업구조조정위원 △2004년 메리츠증권 부회장 △2008년 KB금융지주 사외이사 △2010년 전북은행장 △2013 JB금융지주 회장 겸 전북은행장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