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강서구 미즈메디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러시아 여성 지코바 리우보브.
지난달 서울 강서구 미즈메디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러시아 여성 지코바 리우보브.
러시아에서 온 지코바 리우보브(34)는 지난 26일 꿈에 그리던 아기를 안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결혼 8년차였지만 아기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자궁내시경 검사 결과 용종이 발견돼 나팔관 절제술을 받았고 임신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해 인터넷카페에서 난임치료(시험관 아기 시술)를 잘한다는 서울 강서구 미즈메디병원을 알게 돼 마지막 시도라 생각하고 남편과 함께 서울을 찾았다.

병원은 리우보브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를 채취해 체외수정을 했다. 이를 배아로 키워 자궁에 이식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 곧바로 임신에 성공했다. 리우보브는 지난 4월18일 제왕절개를 통해 건강한 이란성 쌍둥이를 출산했다. 그는 “러시아 여자들 가운데 한국에 가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국내 대다수 산부인과가 불황을 겪고 있지만 일부 병원들은 난임치료로 외국인 환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난임치료는 최근 1~2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의료 한류 열풍의 새로운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기가 없던 부부가 한국에 와 임신에 성공한 사례가 현지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시장 규모도 급속히 커지고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난임치료를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성은 2010년 1173명에서 지난해 3951명으로 늘었다. 3년 사이에 3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국적도 지난해 러시아 814명, 중국 659명, 미국 588명, 몽골 486명, 일본 217명 등 다양했다.
서울 강서구 미즈메디병원 불임센터에서 외국인 환자들이 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미즈메디병원 제공
서울 강서구 미즈메디병원 불임센터에서 외국인 환자들이 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미즈메디병원 제공
미즈메디병원을 찾은 외국인 난임 환자는 2011년 438명에서 지난해 1431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4월까지 벌써 466명이 방문했다. 병원은 연말까지 2000명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환자의 95%는 러시아 여성이다.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프스크 사할린 등 극동 러시아뿐 아니라 시베리아나 카자흐스탄에서도 온다.

미즈메디병원은 러시아 환자가 늘어나자 러시아어를 하는 진료코디네이터 8명을 채용했다. 외래환자들이 이용하는 식당에는 러시아어 메뉴판이 있고, 양고기 요리 ‘샤실리크’, 양배추고기쌈 ‘갈룹치’ 등 7가지 러시아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시술을 받느라 머무는 한 달여 동안 스마트폰도 빌려준다.

차병원은 지난해 외국인 난임 환자가 1342명으로 전년보다 17% 증가했다. 차병원 불임센터를 찾은 외래환자의 절반은 미국인이다. 미국 LA차병원을 통해 입국한 난임 부부가 꾸준히 늘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병원인 제일병원도 외국 난임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지난해 외국인 여성 235명이 난임치료를 받았고 올해는 4월까지 150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러시아·몽골·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에서 많이 온다.

김희정 보건산업진흥원 글로벌기획팀 연구위원은 “외국인 난임 환자 유치 추세를 볼 때 올해는 최소 5000명의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아기가 잉태돼 본국으로 돌아갈 전망”이라고 말했다.

1985년 국내 최초로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킨 문신용 전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미성숙된 난자·정자를 임신이 가능한 상태로 배양하거나 난자·수정란을 냉동시키는 기술, 양질의 배아만 골라 자궁에 이식하는 기술 등은 현재 국내 의료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포괄수가제 적용으로 (산부인과의) 수익이 줄어들고 노산에 따른 의료사고율이 높아지며 폐업이 많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면 충분히 산부인과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