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지금도 쿼티자판을 쓰는 이유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까지 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였다. 석탄 철도 전기 가스 등을 가장 먼저 상용화하는 데 성공하며 세계 경제를 이끌었다. 산업 발전에 힘입어 영국 국민들은 미국 독일 등 후발 산업국보다 나은 삶을 누렸다. 영국 도시들은 1800년대 초중반 이미 가스 가로등을 설치해 많은 시민들이 안전하게 밤거리를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이후에도 영국 도시들은 1920년대까지 효율이 떨어지는 가스 가로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왜 그랬을까. 기존 가스 가로등 사업자들이 신기술인 전기를 조명에 활용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각 시 정부는 전기 조명 사업자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혁신에는 저항이 따른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 키보드의 영문 자판은 ‘쿼티(QWERTY) 자판’이라고 불린다. 세 줄로 돼 있는 알파벳 자판의 맨 윗줄 왼쪽부터 시작되는 Q W E R T Y 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타자기는 18세기 초에 이미 발명됐지만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세기 중후반이었다. 당시는 자판을 치면 글쇠가 리본을 때리고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구조였는데 너무 빨리 치면 엉키는 게 문제였다. 1873년 미국인 크리스토퍼 숄즈가 많이 쓰이는 알파벳을 가운데에서 멀리 배치하는 방식으로 자판을 배열함으로써 엉키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 방식에선 많이 쓰이는 모음(a e i o u)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이 자판이 쿼티 자판이다.

또 다른 미국인 오거스트 드보락은 1932년 타자기 제조기술이 발전했는데도 여전히 쿼티 자판을 쓰는 것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자판 배열을 내놓았다. 모음 등을 가운데에 모은 것이 특징이다. 타이핑 속도는 2배 빨라졌고 타이핑에 드는 힘은 95% 줄었다. 그러나 새 자판은 보급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쿼티 자판에 익숙한 타자수, 타자 교사, 타자기 종사업자 등이 기존에 익숙한 것을 바꾸는 데 저항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세계인 상당수는 80년 이상 지난 지금에도 비효율적인 자판을 쓰고 있다.

마트 규제하면 전통시장 살까

정부는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유통업체에 규제를 가하고 있다.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대형마트로 하여금 한 달에 두 번 일요일에 문을 닫도록 하는 게 대표적 규제다.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들은 이 규제에 힘입어 전통시장이 덕을 보고 있다고 말하지만, 별 효과가 없다는 진단이 더 많다. 대형마트 규제로 줄어드는 대형마트 매출은 온라인 업체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는 게 오히려 더 설득력이 높다.

요즘 소비자들이 예전만큼 전통시장에 자주 가지 않는 것은 불편하고 가격 신뢰도가 약해서다. 주차하기 힘들고 값을 깎지 않으면 왠지 속는 느낌이 든다.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은 상대적으로 더 편하고 가격도 믿을 만하다. 사람끼리 부대끼는 맛은 없지만 가격을 놓고 신경 쓰거나 흥정할 필요는 없다.

현대인들의 삶이 과거와 달라진 만큼 소비 행태도 달라졌다. 온라인 쇼핑이 급증하는 것도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을 살리고 싶다면 정부가 할 일은 전통시장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경쟁업태를 규제하는 게 아니다. 규제는 소비자들의 불편만 초래할 뿐이다.

박준동 생활경제부 차장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