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헛다리 짚은 쌀 관세화 유예 논리
쌀 시장 개방 여부가 선거정국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시장 개방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제법적 의무이고, 이런 의무를 면제받으려면 의무면제 협상밖에는 없는데, 이는 대가가 혹독해서 현실성 없는 대안이라는 입장이다. 개방 반대론자들은 ‘현상유지 협상’을 제안해 볼 수 있는 근거조항이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정 자체에 있는데도 정부가 패배주의에 빠져 시장 개방을 밀어붙이려 한다고 한다. 결국 WTO 협정상 쌀 개방 추가유예가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진실 규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반대론자들이 지목하는 현상유지 협상의 핵심근거는 농업협정 부속서 5의 제3항이다. 제3항은 ‘이행기간(1995~2001) 이후 특별대우의 계속에 관한 협상은… 농업협정 제20조에 따른 협상의 일부로서 이행기간 자체의 시간 범위 내에서 종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농업협정 20조에 따른 협상이란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을 말하므로, 위 조항은 결국 DDA 협상 타결을 관세화 단행의 조건으로 연결시킨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DDA가 진행 중에 있고 여러 선진국들이 그동안 DDA에서 잠정합의 사항들을 준수하지 않는 현상동결 입장을 취하고 있으니 우리도 최소한 현상동결을 위한 협상을 벌일 수 있다는 논리다.

설령 위 조항이 그렇게 확대 해석된다 치더라도 심각한 문제는 위 3항이 한국 쌀이 아니라 일본 쌀에 대해 적용되는 조항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 개도국 지위로 쌀 관세화를 유예받았기에 선진국에 적용되는 3항이 아니라 개도국 조항인 제8항이 적용된다. 8항은 ‘이행기간(1995~2004) 이후 특별대우의 계속에 관한 협상은 2004년 말 이전에 종결된다’고만 규정, ‘농업협정 제20조에 따른 협상의 일부’라는 말이 빠져 있다. 이것은 선진국과 달리 개도국에 대해서는 관세화 유예연장에 관한 협상을 후속 WTO 협상(DDA)과는 별도로 독립된 협상으로 진행하는데 WTO 회원국들이 합의했음을 의미한다.

즉, 현행 WTO 협정상 한국 쌀의 관세화 여부 문제를 DDA 협상과 결부시킬 수 있는 근거조항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사실 우리가 쌀 시장 개방을 한시적으로 유예받은 것은 1992년 종결된 UR 협상의 결과다. UR 협상의 결과물인 WTO 농업협정이 개도국인 한국에 대해 최초 10년간(1995~2004) 유예를 허용하고, 추가 연장이 필요하면 2004년 말 이전에 협상을 타결시킬 것을 의무화했다. 이것이 8항이다. 우리는 이미 이 조항을 활용해 DDA와는 별도로 2004년 말 수출국들과 협상을 벌여 2014년을 최종 유예기한으로 설정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국에 대해 적용되지도 않는 조항을 들먹이며 DDA 현상유지론을 가져다 붙이자는 것인가.

2004년 말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 연장기한을 2015년 이후로 다시 설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이제 2015년 이후로도 시장 개방을 미룰 수 있는 합법적 방안은 없다.

이런 해석이 옳음은 최근 필리핀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애초 개도국 지위를 원용했던 필리핀은 최초 10년 이후로 쌀 관세화를 유예하는 협상을 2004년 말 벌여 추가로 7년간(2005~2011) 유예연장을 허용받았다. 그러다가 2011년 말 재차 연장을 위한 협상을 제안했다가 쌀 수출국들로부터 “WTO 농업협정 부속서 5의 8항에 의한 쌀 관세화 유예 연장은 1회에 한해 가능하고 필리핀은 2004년 말에 이미 이를 사용했으므로 추가 연장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통보받았다. 그래서 필리핀은 더 이상 유예협상 개최를 주장하지 못하고 의무수입물량 대폭 증량을 스스로 제안하면서 WTO 의무면제를 신청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것은 관세화 유예를 1차 연장하는 것은 협상을 통해 가능하지만 그 이후로도 추가 연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데 이미 국제적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식의 소모적 논쟁을 진행하기보다는 무엇이 글로벌 한국 미래 농정(農政)의 방향인지를 논의할 때다.

최원목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wmchoi@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