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공무원에게 자격시험 없이 행정사 자격증을 부여하는 현행법을 놓고 위헌 논란이 일고 있다. 한 해 6만명이 넘는 공무원에게 자격증을 남발하면서 행정사 시험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非)공무원 행정사 시험 합격자들로 이뤄진 공인행정사회는 올해 시험 면제 행정사 6만6000여명을 배출한 근거가 된 행정사법 및 시행령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 심판을 지난 7일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고 10일 밝혔다.

1961년 도입된 행정사 자격증은 지금까지 자격시험 없이 10년 이상 경력 공무원(6급 이상은 5년)에게만 주어졌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는 등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공무원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신청하면 누구나 행정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헌재는 2010년 “행정사 업무를 경력 공무원이 독점하도록 한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는 지난해 최초로 제1회 공인행정사 시험을 실시, 공무원이 아닌 사람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문제는 안행부가 2011년 3월 법률 공포 전 경력(임용) 공무원에 대해서는 예외 규정을 뒀다는 점이다. 지난해 행정사 시험에 응시한 비공무원 출신 1만2000여명 중 최종 합격자는 296명. 하지만 행정사 자격증을 받은 인원은 총 6만6194명에 달한다. 2011년 3월 이전에 임용된 6만명이 넘는 공무원이 시험을 면제받고 행정사 자격증을 받았다. 역대 국가공인시험 중 가장 많은 자격증을 내준 것이다.

안행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서 활동 중인 행정사는 1만여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행정심판이 증가하고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 등을 해결하기 위한 일반인의 업무 대행 요청이 늘어나면서 행정사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시용 공인행정사회 부회장은 “행정사의 전문 역량에 따라 억대 연봉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고 밝혔다. 공인행정사회 관계자는 “행정사 공급을 경력 공무원에게 독점시키고 시험 합격을 통한 행정사의 공급은 유명무실하게 해 행정사 제도를 들러리로 만들었다”며 “공무원과 일반인을 차별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안행부 주민과 관계자는 “변리사나 세무사 시험의 경우도 경력직 공무원에게 시험을 면제해주고 있다”며 “앞으로도 경력 공무원에게 행정사 시험을 면제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헌재는 2009년과 2010년 세무사와 변리사 시험에서 해당 경력 공무원을 대상으로 1차 시험과 2차 시험 일부 과목을 면제해주는 현행법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근무한 분야와 관계없이 모든 경력 공무원에게 자격시험을 면제해주는 것은 지나친 특혜라는 지적이 많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세무사나 변리사와 달리 모든 공무원이 근무 기간 중 행정사 관련 업무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모든 공무원에게 시험을 면제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 행정사

다른 사람의 위임을 받아 행정기관에 내는 인·허가 및 등록, 행정심판, 출입국 관련 등의 업무 문서를 대신 작성·제출하는 공인 자격사. 대(對)국민 행정서비스 확대를 위해 1961년 도입됐다.

강경민/박상익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