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삼성이 총장추천제를 밀어붙였더라면…
안타깝게 됐다. 삼성의 채용방식 변화가 한국 대학교육 개혁에 결정적인 계기가 돼 주길 내심 기대했다. 삼성의료원의 장례식장이 사회적 고민거리였던 한국의 장례문화를 단숨에 바꿔놓았듯이 말이다. 결코 포기돼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공개 채용이란 사실 한국과 일본에서나 통용되는 제도다. 해외 기업들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뽑지 않는다. 수요가 있을 때마다 직무 중심으로 채용하고 신입사원은 뽑지 않는 곳도 많다. 경력사원을 선발해 현업에 즉시 투입하는 게 대부분이다. 당연히 효율적이다.

물론 공채 제도가 고도 성장기에 훌륭한 역할을 해낸 것은 사실이다. 저임금의 인력 투입만으로도 성장이 가능했던 저가 경쟁시대에는 범재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성실성이 아닌 직무별 전문성을 갖춘 맞춤형 인재 확보가 승부를 가름하는 품질 경쟁의 시대다. 공채가 시대적 소명을 다한 이유다.

생각해 보라. 삼성 공채 지원자가 지난해 20만명이었다. SSAT라는 삼성직무적성검사 수험서가 300종이 넘고, SSAT를 가르치는 사설학원도 부지기수다. 시험 당일 비용만도 100억원이 넘는다. 맞춤형 인재 확보는 불가능하다.

재교육이 필수다. 대기업이 한 사람의 신입사원을 재교육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비용은 56.1일에 406만원이나 된다. 그리고도 혼자 기본적인 업무라도 처리할 수 있으려면 6개월이 넘게 걸린다는 답이 62.6%에 이른다. 2년 넘게 걸린다는 응답도 5.8%다. 대한상의 조사 결과다.

결과가 이 모양인 것은 정보의 비대칭성 탓이다. 회사가 응시생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문제는 학교 자료가 오히려 비대칭성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4년제 대학의 77%, 전문대학의 73%가 성적증명서를 ‘교내용’과 ‘제출용’으로 구분해 발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교육부 조사 결과다. F학점이나 재수강 기록은 아예 삭제하고, 4학년 학점은 입맛에 따라 포기할 수 있다. 가히 공문서 위조 수준이다.

기업들이 그래서 요구하는 것이 학교가 아닌 곳의 공인 자료다. 소위 스펙이다. 영어를 전혀 쓸 일이 없는 직종에도 토익 점수를 요구하고 아무 필요도 없는 자격증이나 봉사활동으로 성실성을 측정한다. 이게 무슨 낭비인가.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삼성이 시도하려던 총장 추천서 방식이다. 해외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추천서는 가장 기본적인 서류다. 무엇보다 지원자 자신을 가르쳤던 은사나 전 직장 상사의 추천서가 중요하다. 추천서는 밀봉된 채 해당 기업에 제출된다. 게다가 추천서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단되면 추천인은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추천인이 지원자를 정직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나의 제자이지만 성실하지 않다거나, 직장 부하였지만 공사가 분명치 않았다는 식의 추천서가 적지 않은 이유다. 이보다 정확한 자료가 어디 있겠는가.

삼성의 시도에 걸었던 기대가 바로 이런 결과다. 어디 총장이 마음대로 추천서를 쓸 수 있겠는가. 공정성은 물론이다. 학교 교육 전반을 재점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같은 고민을 해온 다른 기업들은 즉각 삼성의 뒤를 따를 게 분명하다. 대학의 커리큘럼과 교육 방법, 평가 방식은 물론 구조조정에 이르는 모든 개혁 과제가 단숨에 해결될 수도 있었던 기회였다. 중앙대처럼 개혁에 적극적인 대학은 삼성의 발표 직후 대책반을 구성해 대응전략을 논의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이런 기대는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늘 피해 의식을 앞세우는 지역론자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평등주의자, 변화를 거부하는 교수들이 만들어낸 서열화 프레임에 의해서다. 대체 무엇이 서열화이고, 지역차별이고, 성차별인지.

정치인들은 이 기회에 지역감정을 잘 써먹었다며 흡족해했고, 구조조정을 거부해온 교수들은 반개혁의 기치를 내걸 기회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학생들은 ‘떼법’만 익혔을 뿐이다. 그 사이 대학 교육의 개혁과 기업 채용의 혁신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안타깝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