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미국이 미국인 이유
5년쯤 전 미국의 한 경제사학자가 한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20세기 후반 경제적으로 미국을 추월하리라고 예상됐던 나라들이 결국에는 실패했는데, 중국이 과연 다른 나라들과 달리 미국을 앞지를 것인지 흥미롭다는 것이었다.

스푸트니크로 상징되는 1950~1960년대 소련의 과학기술은 미국을 추월하는 것으로 보였다. 1970년대 독일의 경제성장은 눈부셨고, 1980년대는 일본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거품이 미국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과 겹치면서 일본이 세계 경제를 지배할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1990년대 유럽이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되고, 21세기 들어 공통화폐 유로를 사용하면서 미국과 맞설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소련은 붕괴됐다. 독일과 일본은 저성장으로 수렴했고, 유럽 통화동맹의 문제는 최근의 재정위기를 통해 불보듯 분명해졌다.

이제 중국이다. 1970년대 후반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고도성장의 성과를 냈고, 중국이 미국을 언제 추월할 것인지가 화두가 됐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중국은 미국을 추월할 수 있을까. 중국 인구가 미국의 네 배 이상이니까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의 4분의 1만 되면 중국 GDP가 미국을 추월하게 된다. 그런 변화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1인당 GDP가 21세기 안에 미국의 그것을 추월할 가능성은 없다고 감히 예측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력과 그 영향력은 21세기에도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소련 독일 일본 유럽이 미국을 추월하지 못한 현상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론적인 추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나라들이 경험한 고도성장은 20~30년 동안의 일시적인 현상이며, 그 이후에는 저성장의 장기경로로 빠르게 수렴한 다음 항구적으로 유지됐다. 따라서 길게 볼 때 경제적 성과는 이 장기경로의 높낮이에 달려 있다. 그런데 지금 세계 선진국 가운데 장기 성장경로가 미국보다 높은 나라는 없어 보일 뿐만 아니라 개도국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장기 성장경로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너무나 상식적이지만 경제성장은 자본, 노동, 기술의 축적으로 설명된다. 단기 성장경로와는 달리 장기 성장경로의 높낮이는 이 요인들뿐만 아니라 경제의 바탕을 형성하는 이념과 제도, 전통, 문화, 그리고 정책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은 정치·경제적으로 시장과 경쟁, 자유와 재산권, 그리고 모든 선택에 자본주의의 인센티브가 가장 잘 살아 있는 나라다. 그리고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소멸하고 경쟁력이 있는 산업은 불현듯 일어나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시가 파산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것을 미국 쇠락의 한 징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라. 그것은 창조적 파괴의 한 단면이라는 점을. 자본이나 노동과 같은 생산자원들이 가장 효율적인 산업과 지역으로 이동하는 징조라는 것을. 역설적이게도 거기에 미국 국력의 원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디트로이트와 같은 산업도시가 파산하더라도 시장의 원리에 따라 해결되도록 하는 것은 도저한 정책행위임을 인식해야 하고 그 저변에 존재하는 정책의 패턴과 노하우를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는 아직 고도성장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있는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이 나라가 장기 저성장경로에 들어서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제도, 시장과 경쟁, 정치와 정책이 장기 저성장경로를 더욱 끌어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철저한 분석과 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말이다. 이제 모든 경제 문제를 긴 호흡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조장옥 < 서강대 경제학 교수 choj@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