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는 시장경제] 사장에서 노숙자로…택시기사로 재기한 백중선씨의 특별한 설
‘어머니. 못난 자식을 찾는 곳이 많아졌어요. 이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습니다.’

택시회사인 대지운수의 서울 풍납동 차고지에서 28일 만난 택시기사 백중선 씨(64·사진)는 설을 맞아 여든일곱 노모에게 쓴 편지 한 통을 보여줬다. “태어나서 어머니에게 처음 쓴 편지”라고 했다. 그만큼 올해 설은 그에게 남다르다. 사업 실패 후 노숙생활을 하다 재기에 성공한 뒤 처음 맞는 명절이기 때문이다.

백씨는 강동구 성내동에서 건설업체를 경영하던 사장이었다. 외환위기 직전까지 상봉동의 대형 아파트에서 살면서 당시 가장 비싼 차종이던 ‘뉴포텐샤’를 몰았다. 외환위기 이후 일감이 줄면서 회사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직원 월급을 마련하려고 받을 돈이 있던 거래처에 보증을 선 게 파국의 시작이었다. 10억원 가까운 재산을 날렸다. 사업 20년째인 2002년 회사를 정리하고 3평 남짓 고시원으로 옮겼다. 그는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며 “부산 태종대 바위에 올랐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어 이후 9년간 전국을 떠돌며 노숙생활을 했다.

2010년 전남 목포 유달산에서 만난 한 노부부는 그의 인생을 바꿨다. 부산에서 신발공장을 하다 망해 목포로 옮겨와 농사를 짓고 있던 부부는 “큰 욕심 내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들려줬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곧바로 서울로 올라온 그는 일자리를 찾던 중 택시면허시험장을 지나게 됐다. 서울 지리에 누구보다 익숙하다는 사실을 떠올린 그는 자격증을 따자마자 대지운수에 입사했다.

“운전하며 승객들과 대화를 나누니 큰 힘이 되더군요. 다양한 사연을 메모장에 적는 습관을 갖게 됐지요.” 3년간 모은 메모장으로 지난해 5월 ‘사랑의 택시 인생극장’을 출간했다. 책에 담은 그의 진솔한 마음은 주변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올 들어 서울대를 비롯한 각 대학에서 강연을 요청해 왔다. 최근엔 ‘책을 잘 봤다’는 청와대 비서실의 감사 편지에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연하장도 받았다. 지난 26일에는 영화제작사로부터 인생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제의도 있었다.

백씨는 택시기사로 일하며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건설사에서 데리고 있던 직원이 2011년 손님으로 탄 것이다. 직원은 “회사가 망해 직원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고 있는 줄 아느냐”고 원망했다. 백씨는 “눈물이 흘러 운전할 수가 없었다”며 “그때를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얘기를 전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