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이 명절 선물로 인기를 끌면서 연간 발행 규모가 10조원에 이르렀다. 16일 오후 신세계백화점 본점 1층 상품권 판매소가 설 선물용 상품권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상품권이 명절 선물로 인기를 끌면서 연간 발행 규모가 10조원에 이르렀다. 16일 오후 신세계백화점 본점 1층 상품권 판매소가 설 선물용 상품권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16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상품권 판매소. 은행처럼 대기표를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번주 들어 평소보다 두 배 이상 고객이 늘었다. 하루 700여명이 찾아 20분 이상 순서를 기다려야 할 정도다.

상품권은 최고의 명절 선물이다. 뒤집어 말하면 백화점 등의 명절 간판상품이라는 의미다. 실제 롯데백화점만 해도 작년 설날과 추석 때 각각 3500억원 이상의 상품권을 팔았다. 1000억원 안팎에 머무르는 한우 과일 등 선물세트 매출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은 이번 설 상품권 판매금액이 작년 설보다 1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발행규모 연 10조원 시대

주유 상품권, 백화점 상품권보다 비싸게 거래
업계에서는 국내 상품권 발행금액이 연간 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 3사와 홈플러스가 5조1000억원어치, SK GS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정유 4사가 8000억원가량을 발행했다.

문화상품권은 6000억원, 전통시장에서 쓰는 온누리상품권은 3200억원어치가 발행됐다. 이 밖에 구두상품권, 의류상품권, 각종 음식점과 제과점이 발행하는 상품권, 지방자치단체 상품권 등이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스마트폰 가입자가 3500만명을 넘으면서 모바일 상품권 발행도 급증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4900억원어치의 모바일 상품권을 발행했다. 2009년 800억원에서 4년 만에 6배가 됐다. 이 백화점은 올해 모바일 상품권 발행금액이 지난해보다 12.2% 증가한 55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유상품권이 백화점보다 인기

‘상품권 매매’란 간판이 붙어 있는 서울 명동의 한 구두수선소. 1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사러 왔다고 말하자 “롯데백화점 9만6000원”이라고 말했다. 바로 옆 허름한 건물 1층에 있는 또 다른 상품권 매매업소에선 “9만5700원”을 제시했다. 상품권 매매가 늘어나면서 일종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명동 일대 상품권을 사고파는 곳에서 몸값이 가장 높은 것은 주유상품권이다.

상품권 도매업체 잔나비닷컴은 16일 SK 주유상품권 10만원권을 9만7700원에, 롯데상품권 10만원권을 9만5600원에 판매했다. 금강제화 에스콰이아 등 구두상품권은 30% 이상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액면금액이 같은 상품권의 할인율이 다른 것은 용도와 유통 물량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김창신 잔나비닷컴 대표는 “주유상품권은 자동차 운전자가 일상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인 데다 백화점 대형마트 외식업체 등 쓸 수 있는 곳이 90여곳이나 돼 찾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백화점상품권 중에서는 보통 롯데상품권이 가장 높은 값을 받는다. 롯데가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등 넓은 영업망을 확보하고 있어 상품권을 쓸 수 있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최근 가격이 오른 것은 현대백화점 상품권이다. 서울 명동의 한 상품권 매매업소에선 현대백화점 상품권 10만원권을 9만6000원, 롯데상품권 10만원권을 9만5700원에 팔고 있었다. 이 상인은 “현대백화점 상품권이 사용처는 적지만 시장에 풀린 물량이 많지 않아 높은 값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 상품권은 9만5300~9만5500원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돼 있다.

◆상품권 할인율로는 경기 호전


상품권 할인율은 경기를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경기가 안 좋으면 상품권을 팔아 현금으로 쓰려는 사람들이 늘어 할인율이 높아진다. 즉 상품권 가격이 낮아진다. 반대로 경기가 좋을 때는 상품권 수요가 늘면서 할인 폭이 축소된다.

이런 경기진단법에 따르면 올해 설 경기는 지난해 추석보다는 나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롯데상품권 10만원권은 최근 4% 정도 할인된 9만6000원 안팎에서 거래된다. 작년 추석 때는 같은 상품권이 5.5% 이상 할인돼 9만4000~9만4500원 수준에서 팔렸다.

한 상품권 도매상인은 “상품권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진 걸 보니 경기가 조금씩 풀리는 모양”이라며 “설이 다가올수록 상품권을 구하려는 사람이 많아져 다음주에는 10만원짜리 상품권 가격이 100~200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