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美 테이퍼링, 엔저 가속화가 문제다
지금 세계경제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를 뜻하는 ‘테이퍼링(tapering·폭이 점점 가늘어짐)’ 시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등 선진국들은 양적완화를 통해 통화량을 증대시켜 왔는데, 미국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기미를 보임에 따라 출구전략을 본격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미국의 제조업지수가 2011년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테이퍼링의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테이퍼링이 시작되면 시장에 달러화 공급이 감소하므로 미국의 금리가 상승하고 달러화는 상대적으로 강세가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각국의 대응방안이 상이해 그동안 경기부양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유지해온 정책 공조체제가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상황은 시장에 정책의 불확실성을 높이게 되며 경제는 타격을 입는다.

전문가들이 테이퍼링의 시작 시점을 내년 3월로 예상하는 가운데, 미국 월가는 이로 인한 달러 강세가 시장에 미칠 충격을 걱정하고 있다. 지난 5월 버냉키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발언 이후 주가가 폭락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이퍼링의 시행으로 금리가 급등하면 투자가 감소해 미국의 경기회복을 저해할 위험이 있어 달러 강세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유럽은 여전히 낮은 물가상승률과 실업 문제로 추가적인 양적완화가 논의되고 있으며, 제로금리에서 더 떨어진 마이너스 금리의 가능성도 내보이고 있다. 일본 또한 내년에도 아베노믹스로 엔저 기조를 유지하겠다며 양적완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테이퍼링으로 인한 달러 강세는 각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 내에서는 금리 상승, 국채 가격 하락, 주가 하락이 예상된다. 그러나 금리의 상승은 현 경기 회복의 흐름을 둔화시킬 수도 있다. 유로존의 경우, 미국과의 정책공조가 무너지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될 것이며, 유로존의 위기가 재연될 수도 있다. 일본 또한 아베노믹스가 실패할 경우의 리스크가 더 커지고 있다. 환율변동성에 취약한 신흥국은 급격한 외화 유출로 자국 통화가치 폭락, 주가 폭락, 환율 급등의 악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은 다른 신흥국처럼 통화가치 급락의 위험이 매우 크지는 않다.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 충분한 외환보유액, 타국에 비해 높지 않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덕분이다. 그러나 현재 유입된 외화도 단기적인 투기자금의 성격이 강해 자본유출이 우려되며, 그에 따라 주식시장도 단기적으로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문제다. 출구전략에 따라 금리가 인상되면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는데, 이는 소비를 더욱 위축시켜 실물경제의 활력을 저하시킬 것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엔저로 수출에 악영향을 받고 있는데, 테이퍼링에 의한 달러강세는 엔저를 가속화해 한국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방증이자 금융정책이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 과정에서 겪어야 할 부작용들은 정상궤도로 복귀하기 위한 대가로서, 정책당국은 다음 몇 가지 사항에 유념해 이를 적절히 극복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첫째, 외화의 급격한 유출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환율변동성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관리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수출을 늘려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런 정책과 함께 기업은 환율변동성에 흔들리지 않는 수출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조하현 < 연세대 경제학 교수 hahyunjo@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