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상수지 흑자 실속있나?
올해는 경상수지 흑자가 많이 날 것 같다. 연말까지 사상 최대인 630억달러 흑자가 예상된다. 한국이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적으로 낸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다. 1997년 4분기부터 2013년 3분기까지 16년 동안 누계 3920억달러 흑자를 냈다. 그 바탕에는 무엇보다 고환율이 있다. 그래서 미국 재무부와 일부 경제학자들이 한국의 환율을 문제 삼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는 저축을 해외에 투자한 것을 반영한다. 따라서 경상수지 흑자는 순대외자산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실제로 한국의 순대외자산은 1997년 9월 말부터 2013년 9월 말까지 342억달러 늘었다. 그러나 이것은 같은 기간 경상수지 흑자 3920억달러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외국인의 한국 자산은 가격이 크게 올랐다. 반면 한국의 대외자산은 그러지 못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대외자산은 큰 부분이 외화준비금인데, 그 가격이 오르지는 않는다. 그 이외의 자산도 외국인의 한국 자산만큼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

이것만이 아니다. 외국인의 한국 자산은 한때 42%까지 갔던 주식 보유비중이 33%로 떨어진 데서 보는 것처럼 대규모 차익을 실현해 나가고 난 뒤의 수치다. 거기에다 배당이나 이자를 받아 나간 것도 있다. 한국인의 해외투자는 그만큼 수익을 낼 수 없었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외환위기 후 외국인의 대한투자 수익과 한국인의 해외투자 간의 수익 차이는 경상수지 흑자액 3920억달러를 초과할 것이다.

이런 계산에는 반론도 있다. 우선 외국인의 한국 자산 중 주식은 채권이나 차입금 같은 부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명시적인 부채가 아니라 하더라도 채무인 것은 마찬가지다. 자산의 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채무라는 사실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의 반론은 수익의 차이가 위험과 교환한 결과라는 것이다. 우선 위기 직후 투매를 통해 유입된 외자는 고위험을 감당함으로써 고수익을 올렸고, 그것은 한국의 외환위기 극복을 도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위기가 바로 그런 고위험-고수익 투자 기회를 노리는 외자를 위해 미국 재무부가 ‘일으킨’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투매 국면이 끝나고 난 뒤 일부 거래에서는 위험과 수익의 공정한 교환이 있었겠지만, 수익 차이가 ‘투자 능력’을 반영하는 면도 클 것이다. 현대 자본시장은 케인스가 말했듯이 거대한 카지노다. ‘돈을 딸 자신’이 없으면 카지노에 가지 않을 권리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자본시장 개방을 강제당함으로써 그런 권리를 박탈당했다. 궁극적으로 수익을 위험과 교환했다면 위기 후 한국인의 삶이 더 안정됐어야 한다. 그러나 늘어난 비정규직과 올라간 해고 가능성 때문에 한국인의 삶은 훨씬 불안정해졌다.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에서 그보다 더 큰 수익의 차이가 나게 된 것은 출산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더 심각한 문제다. 한국의 출산율은 위기 전 10여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1.6명 정도를 유지했지만 올해 1.1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다음 세대가 기성세대를 부양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기성세대는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순대외자산을 쌓음으로써 노후에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것이 ‘늙어가면서 모아놓은 재산은 없는’ 한국인의 모습이다.

한국이 이런 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여러 국제정치·경제적 조건 때문에 그것이 불가피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할 말은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환율을 문제 삼는 사람들에게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대하지 말고 한국의 실상을 들어 항변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도 할 수 없는 실정이라면 그런 무시무시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한국인끼리라도 알고는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leejm@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