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부작용에만 주목해 규제를 남발한다면 창의성이 중시되는 정보기술(IT)산업 전체가 퇴보할 겁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투자회사 알토스벤처스의 한킴(한국 이름 김한준) 대표(사진)가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 만능주의’에 빠졌다고 일침을 가했다.

김 대표는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일명 게임중독법) 등 각종 IT산업 규제 법안에 대해 “말도 안되는 법안”이라며 “법이 통과될 경우 한국 시장을 포기하고 해외로 나가는 업체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중독법은 게임을 마약과 같은 중독 물질로 규정, 이를 관리하는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이다.

지난 8일 정부 주관 ‘서비스산업 선진화 국제포럼’에 참석한 김 대표의 목소리에는 고국의 IT산업이 정부 규제로 퇴보할 것이라는 벤처 투자자로서의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묻어났다. 김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알토스벤처스는 한국에서 쿠팡·판도라TV 등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뒀다. 지난 8월에는 정부와 2000만달러 규모의 벤처투자펀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그는 “정부는 ‘창조경제 킬러 콘텐츠’를 만들라고 독려하지만 한편으론 (IT산업)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를 만들고 있다”며 “이렇다 보니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을) 중국만큼 투자하기 어려운 나라로 꼽는다”고 말했다. “IT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본사는 미국에 두고 인력만 한국에 두는 형식으로 규제를 피할 수 있다”며 “매출을 한국에서 올리면서 세금은 미국 정부에 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규제의 부작용을 경고했다.

실제 올 들어 한국 정치권은 중독법 이외에도 게임 매출의 최대 1%를 ‘인터넷게임중독유치부담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손인춘 새누리당 의원) 등 각종 IT산업 규제안을 쏟아내고 있다. 같은 당 황우여 대표는 게임을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하고 “이 사회를 악에서 구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프랑스를 예로 들면서 “정책은 선의(善意)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지만 정책 결과는 꼭 의도한 대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정부는 정규직은 물론 비정규직도 해고하기 어렵도록 규제해 무분별한 근로자 해고를 방지하고 있으나 기업들은 경기 침체 때 인력 구조조정이 어려워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는 “선의는 알겠지만 이를 규제로 풀면 안된다”며 “규제가 남발되면 한국은 머지않아 미국 등 IT 강국에 게임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