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의원님, R&D가 수상합니까?"
농촌진흥청이 이직·퇴직 공무원들에게 수백억원대의 연구과제를 지원했다고 논란이다. 국정감사에서 나온 얘기다. 2000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이직하거나 퇴직한 농진청 공무원 99명에게 247개 과제, 310억원을 몰아주었다는 것이다. 워낙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농진청이라 별로 놀랄 것도 없다. 의원님들만 모르셨나 보다.

‘그들만의 리그’가 어디 농진청뿐이겠나. 부처마다 이런 돈주머니 하나쯤은 꿰차고 있다. 연구과제 나눠준답시고 ‘평가’니 ‘진흥’이니 하는 관리기관도 다 거느리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 새로운 계획이라도 수립할 때면 이를 놓치지 않고 관리기관을 늘리는 것도 불문율이다.

‘그들만의 리그’ 만들기 경쟁

미래부가 ‘정보통신기술(ICT) 연구개발(R&D) 전략’을 내놨다. 5년간 총 8조5000억원을 투입, 생산유발 12조9000억원, 부가가치 창출 7조7000억원, 일자리 18만개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김이 없다. 정보통신기술진흥원을 새로 만든다고 한다. 아니 진흥원이 없어 지금까지 ICT 연구개발을 못했나. 융합, 융합 하더니 결국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쁘다.

부처마다 관리기관이 생길수록 R&D는 더 폐쇄적으로 돌아간다. 규정들이 복잡해지는 건 당연하다. R&D사업을 한다는 19개 부처의 연구관리 규정만 111개다. 근거 법률도 97개에 달한다. 연구자들은 숙지할 엄두조차 안 난다고 말한다. 결국 연구외적 능력이 뛰어나야 유리해지는 구조다.

물론 규정이야 완벽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연구자를 위한 이의제기 제도 같은 건 허울에 불과하다. 찍힐까 두려워 이의를 제기할 연구자도 없고, 권장하는 부처도 없다. 잘못하면 감사원의 감사거리만 된다. 반면 관리자를 위한 평가 규정들은 춤을 춘다. 연구자들은 평가보고서 쓰느라 연구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럴수록 관리기관의 힘은 더 세진다.

정부는 모험적·도전적 연구를 주문한다. 이를 위해 ‘성실실패’를 인정하겠다고 한다. 성실했다면 실패의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성실했음을 판정받을 바에는 차라리 위험한 연구는 안 하고 말겠다는 생각이다.

도전·모험적 연구는 불가능

우리나라에는 선진국에 없는 제도가 하나 있다. 연구가 성공하면 정부는 참여기업으로부터, 지원한 연구개발비의 일부를 기술료란 명목으로 환수해간다. 기업은 실패로 인한 불이익보다 성공과 기술료 납부 쪽을 택한다. 기술료를 많이 거두면 관리기관의 일감이 늘어난다. 부처로서도 기술료가 많은 사업은 예산을 늘리는 데 유리하다. 정부과제 성공률이 세계 최고다. 인센티브 구조가 이러한데 ‘성실실패’가 가능하겠나.

해결할 방법은 있다. 부처 R&D의 벽을 없애고 개방하면 된다. 복잡한 규정들을 단순화하면 부처별 관리기관을 하나로 통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융합을 위해서도 관리기관 통합이 급선무다. 후진국에나 있을 법한 기술료 규정도 즉각 없애고. 의원님들이 왜 이런 걸 주문 안하는지 모르겠다. 의원님들이 호통만 치면 부처나 관리기관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기관을 또 만들거나, 규정을 더 복잡하게 다듬을 뿐이다. 그럴수록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융합이나 창의적 연구는 발도 붙이지 못한다. 실로 악순환의 반복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