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사태 후폭풍] 회사채 시장 '불신 쓰나미'…1% 기업 아니면 못 버틸 판
비우량 회사채 시장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 기관투자가의 빈자리를 대신해온 개인들마저 보유 물량 헐값 처분에 나서면서 더 이상 시장을 지탱해줄 투자자를 찾기 어렵게 돼서다. ‘동양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까스로 버텨온 기업들에 결정타를 날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대로 시장을 방치했다가는 1%도 안 되는 극소수 상위 기업만이 자본시장에서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견기업들은 이미 ‘신용 공황’ 상태에 빠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투매 나선 ‘마지막 투자자’

비우량 회사채의 마지막 최대 수요층이던 개인투자자들은 지난달 30일 이후 보유 물량을 팔아치우고 있다. 동양그룹 5개 계열사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해 5만명에 가까운 개인투자자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만기가 11개월 정도 남은 두산건설72-3회 채권(액면 1만원)은 장내 유통시장에서 9월30일부터 이달 8일 사이 평균 9270원 수준에 거래됐다. 9월 들어 29일까지 평균 1만158원 수준이던 거래가격이 8% 넘게 빠졌다. 수익률로 따지면 연 7.4%에서 연 16.8%로 올랐다.

같은 기간 두산건설과 신용등급이 같은 한라건설(BBB+)도 일부 회사채가 연 13.8% 수준에 거래됐다. 한진해운(A-)은 11.9%, 동부제철(BBB) 13.4%, 코오롱글로벌(BBB)은 13.9%에 팔렸다. 종전과 비교하면 적게는 1.5%포인트에서 많게는 5.7%포인트나 금리가 뛰었다.

◆상위 1%만 시장에서 버틸 것

전문가들은 개인들의 투매가 비우량 회사채 시장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본부장은 “개인 중심인 회사채 장내거래시장은 신용등급 ‘A급’ 이하 회사채 시장이 더 이상 필요한 수요를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개인 대상 고수익 증권 판매창구였던 증권사 특정금전신탁까지 영업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더 많은 중견기업을 자본시장 밖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국내 신용평가 3사에 따르면 현재 투자등급을 보유한 기업은 약 600곳이다. 이 중 충분한 투자 수요를 확보하고 있는 ‘AA등급’ 이상 우량 대기업은 절반인 300곳에 그치고 있다. 올 2월 말 현재 외부감사 대상 대기업 2만263곳 중 1.5% 정도만 제대로 된 자본시장 접근이 가능한 셈이다.

한 자산운용사 회사채 운용역은 “회사채 펀드와 같은 비우량 회사채 수요를 활성화하지 못한다면 국내 자본시장은 1%에도 못 미치는 기업들의 전유물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다.

◆금융당국 ‘안간힘’ 써보지만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은 비우량 회사채 수요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뭉칫돈 투자에 나서고 있다. 산업은행은 최근 건설업황 침체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동부건설과 한양 회사채를 각각 100억원과 200억원 규모로 인수했다. 정책금융공사도 동부제철 등 일부 비우량 회사채 투자에 적극 뛰어들면서 몸을 사리고 있는 금융회사들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하지만 민간 수요가 줄어들면 비우량 회사채 시장이 장기간 유지되긴 어렵다는 게 시장 평가다. 한 회사채 발행 담당자는 “동양사태 전에는 산업은행이 50%를 인수하면 나머지는 개인투자자와 저축은행 등 서민금융회사에 판매했다”며 “나머지 절반을 받아줄 곳이 없다면 미매각 물량을 인수해야 하는 증권사들부터 주관업무 자체를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윤아영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