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해운·조선·건설 회사채 사준다"
정부가 8일 발표한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은 해운 조선 건설 등 취약업종의 경기 침체가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들 업종의 만기 도래 회사채 차환을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내년까지 만기 도래하는 취약업종의 회사채 14조원 중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4조원에 대해 차환발행할 방법을 마련해 줌으로써 회사채 시장을 정상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급한 불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취약업종 회사채 선제적 지원

이날 발표된 방안의 핵심은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이다.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 등을 통한 지원 대상은 7월부터 내년 12월까지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다. 해운 조선 건설 등 취약 업종이 몰린 일정 신용등급 이하 기업이 지원 대상이다.

채권은행 금융투자업계 신용보증기금 등으로 구성되는 ‘차환발행심사위원회’가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한다. 해당 기업은 회사채 만기 도래분의 20%를 자체 상환한다. 나머지 80%는 산업은행이 인수한다.

산은은 총액인수한 회사채를 금융투자업계와 증권유관기관이 3200억원 규모로 조성하는 회사채안정화펀드에 10%, 발행 기업의 채권은행들에 30%를 각각 매각한다. 산은 인수분 중 나머지 60%는 신보가 보증하는 ‘시장안정 P-CBO’에 순차적으로 분할 편입된다.

이 과정에서 기획재정부와 정책금융공사가 신보에 3500억원씩 출연하고 여기에 신보의 보유재원(1500억원)을 더해 보증재원으로 활용한다. 한국은행은 정책금융공사에 신보 출연을 위한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업체당 최고 지원 한도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각각 1500억원, 중소기업이 750억원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장안정 P-CBO는 건설사를 위한 P-CBO 제도를 확대 개편하는 것인 만큼 지원 한도 역시 1.5배로 늘렸다”고 말했다.

정부는 회사채 차환발행 지원과 함께 비우량 회사채를 일정비율 이상 편입한 회사채 펀드(하이일드펀드)에 대해서는 세제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신용등급 ‘BBB’ 이하 회사채를 30% 이상 편입한 펀드를 대상으로 투자금액 5000만원까지는 펀드 배당 소득에 대해 14% 분리 과세할 계획이다.

◆“급한 불 진화” vs “미봉책”

채권시장 참여자들은 이번 대책이 취약업종에 속한 비우량 기업들이 급한 불을 끄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류승화 NH농협증권 투자전략팀 부장은 “A등급에 포진해 있는 해운업체들이 일차적으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1, 2위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현재 똑같이 ‘A-(부정적)’ 신용등급을 받고 있다.

하이일드펀드에 대해 분리과세 혜택을 얻기 위해 BBB급 회사채를 펀드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BBB+ 등급 회사채 품귀 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동부나 코오롱 등 BBB급 그룹사들의 수혜가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반면 강력한 구조조정 없이 진행되는 유동성 지원이 취약업종의 위기를 뒤로 미루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종민 삼성증권 FICC상품팀장은 “구조조정 지연과 신용등급 봐주기가 지금의 회사채 시장 양극화를 만들어낸 원인”이라며 “이번 조치로 단기적인 위기 수습 효과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체질 개선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도형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부장은 “자구노력 없이는 국내 해운사들 경영이 정상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 만큼 다소 엄격한 조건을 부과해 무임승차를 단속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류시훈/이태호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