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숨이 가빠서 정상에 갈 수 있겠어요? 나는 먼저 올라갈테니 숨차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올라오세요.”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 대장(47)에게 소백산은 그렇게 높은 산이 아닌 듯했다. 블랙야크의 이사를 맡고 있는 오 대장은 지난 21일 국내 명산 40좌를 등반하는 이벤트인 ‘명산 40’에 참여해 소백산 새밭계곡 초입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기자를 “천천히 올라오라”며 다독였다. ‘이제 겨우 시작한 지 20분밖에 안됐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은 1439m 높이의 봉우리다. 비로봉으로 가는 여러 갈래길 중 가장 짧은 새밭계곡 코스는 5.1㎞ 길이의 등산로로, 짧은 대신 가파른 편이다. 산자락을 따라 오르다 보면 여러 개의 나무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그때마다 아직 찬 계곡의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백산 등산로엔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 등산로 군데군데 얼음이 바위에 살짝 붙어 있었고 쨍한 햇볕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찼다. 이날 영하 5도까지 내려간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여러 겹을 겹쳐 입은 기자는 산행을 시작한 지 20여분 만에 걸음을 멈추고 내피를 벗어야 했다. 숨만 찬 게 아니라 땀이 등줄기를 따라 줄줄 흐를 정도였다.

산행에 나서기 전 ‘오은선 대장과 함께 소백산에 오르게 되다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였다. 실제로 만난 오 대장의 체구는 작고 아담했다. 그러나 오 대장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담담하게 산에 올랐다. 명산 40에 도전하는 일반 등산객들과 오 대장이 산에 같이 오르는 건 1월 초 태백산, 2월 초 관악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였다. “일반인과 같이 산에 오르면 주로 어떤 질문을 받느냐”고 오 대장에게 물었다.

“‘8000m나 되는 그 높은 산들을 어떻게 올랐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하죠. 그러면 ‘그냥 걸어서 올라갔다’고 대답하고 웃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올라가다보면 결국 정상에 서게 된다’는 ‘고수’의 철학일까. 20여분 동안 오 대장, 김점숙 블랙야크 안전산행 아카데미 강사와 함께 산을 오르는 동안 오 대장은 기자를 기다리느라 두어 번 걸음을 멈춰야 했다. 미안한 마음에 “먼저 올라가라”고 했더니 1분도 채 되지 않아 오 대장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마치 평지를 걷 듯 유유히 사라졌다.

블랙야크의 명산 40에 도전한 사람은 2800여명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 이벤트에 도전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왜 돈(5만원)을 내고 ‘40개 명산 정상에 오르겠다’고 덤벼든단 말인가. 이날 기자의 산행 가이드로 나서준 김종우 블랙야크 익스트림팀 주임은 “주말마다 산을 찾는 40~60대 등산객들이 아주 많다”며 “이들은 기왕 산을 찾을거면 명산 40 프로젝트에 참가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르면서 쓰레기를 주워담고 명산 40이 적힌 깃발을 정상에서 흔들 때 성취감을 느끼는 등산객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나무다리를 두 개 지나자 얼음이 채 녹지 않은 바윗길이 나타났다. 대충 봐도 경사가 45도쯤 돼보였다. 20여분간 숨가쁘게 오른 뒤 나타난 평평한 길이 약 10분가량. 이 같은 코스가 계속 반복됐다. 오르다보니 명산 40에 도전한 등산객 대여섯명을 만날 수 있었다. 등에 멘 배낭에는 명산 40 깃발이 달려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자 “젊은이들이 산에를 다 왔네. 우린 먼저 올라갑니다”라며 50대 부부가 저벅저벅 큰걸음으로 우릴 지나쳤다.

총 5.1㎞의 산길은 쉽게 끝이 나질 않았다. 30~40도 경사의 산길, 15도가량의 야트막한 언덕들을 지나고 얼음이 붙은 바윗길을 지나도 정상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2시간30분을 쉬지 않고 올라갔지만, 이정표는 아직도 정상이 2㎞ 남았다고 일러줬다. 준비가 덜된 탓이었을까. 이날 기자는 다음 번 도전에 정상을 밟을 것을 기약하며 중간에 산에서 내려와야 했다. 명산 40에 도전한 2800여명 중 5좌 등반에 성공한 사람이 1500여명, 10좌에 성공한 사람이 벌써 800여명이 된다는 게 블랙야크 측의 설명이다. 기자와 같이 평소 산을 잘 찾지 않는 보통 체력의 독자라면 야트막한 산에 먼저 도전하시길….


◆14세 이상 누구나 참가 … 완주자 40명 추첨해 국내외 명산 트레킹 기회 제공도

블랙야크의 ‘명산40’은 블랙야크 창립 40주년을 맞아 한국을 대표하는 산 40개를 고객들과 함께 오르는 이벤트다. 40개 명산을 다 오르면 총 4만7171m를 오르게 된다.

설경, 기암, 봄꽃, 철쭉·가족, 신록, 명산, 성하·계곡, 초가을·야생화, 단풍, 억새·초동 등 10개 테마로 나눠 국내 명산 40곳을 오르게 된다. 블랙야크의 등산 도우미(셰르파)들이 정상에서 기다리면서 참가자들의 정상 등반을 인증해주고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도 대비한다.

명산40은 14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마운틴북 홈페이지(www.mountainbook.co.kr)에서 5만원의 참가비만 결제하면 올 한 해 40개 명산 등정에 도전할 수 있다. 회사 측은 40좌 도전 기념 모자와 원하는 곳에 붙일 수 있는 패치 1장, 도전단 깃발과 쓰레기봉투를 나눠준다. 이 물건들을 갖고 산 정상에 올라 ‘인증샷’을 찍어 올리면 1좌 완등을 인정해주는 방식이다. 오르는 산의 높이 1m당 1원씩 블랙야크 마일리지를 적립해준다. 40개를 모두 완주한 사람 중 40명을 추첨해 국내외 명산 트레킹 기회도 줄 예정이다.

산 한 곳에서 한 번만 인증할 수 있다. 교통편은 제공되지 않지만 카풀 게시판을 이용해 동행인을 찾을 수 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의 경우 정상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 안전사고가 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자율인증’으로 운영한다. 본인이 오르고나서 사진을 찍어 올리면 블랙야크 익스트림팀에서 명산40 이벤트에 신청한 사람인지 확인한 뒤 인증을 해주는 방식이다.

김종우 블랙야크 익스트림팀 주임은 “1년 동안 진행하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지금 참가 신청을 해도 40개 산을 모두 오를 수 있다”며 “현재까지 참가 신청을 한 사람만 2800여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5좌, 10좌, 20좌, 30좌, 40좌를 완등할 때마다 버프, 셔츠, 바람막이 재킷 등의 기념품을 순차적으로 받을 수 있다.

봄맞이 대청소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산에 오르면서 블랙야크 로고가 새겨진 쓰레기봉투 안에 쓰레기를 주워담는 행사로, 봉투가 보이게 정상에서 사진을 찍어 인증을 받으면 블랙야크 전 제품 구입시 30%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을 준다. 대청소 이벤트에 가장 많이 참가한 사람 가운데 40명을 뽑아 3만원짜리 상품권도 증정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가야산, 덕유산, 주왕산 등 15개 산에서 청소를 했고 5월 말까지 계속 진행한다.

소백산(충북 단양)=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