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朴대통령의 길었던 지난 한달
개털이다! 친박(親朴)들의 자조다. 다행스러운 측면도 있다. 공신이 많은 것도 짜증스럽다. 박근혜 정부 한 달이 지났다. 국민들에게도 길었다. 어제 또 한 명이 낙마했다. 지난 한 달을 평가할 때는 한국인의 취미가 정치 논평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누가 더 화려한 언어로, 객관성을 위장하면서 준엄하게 비판하는지를 겨루는 것이 요즘의 저녁 자리다. 풍자와 골계(滑稽)로 따지면 개그콘서트를 일축한다. 지도자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일본 총리의 유통기한은 10개월이다. 아베까지 5년 동안 6명이 바뀌었다. 한국도 1년이면 충분하다. 박 대통령은 벌써 50%를 밑돈다. 내각제가 된다면 한국 지도자의 유통기한은 일본보다 필시 짧아질 것이다.

인사부터가 논란의 연속이었다. 낙마하는 인물이 많았다. 관료 출신이 대거 기용된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문민통치 원칙 위반이며 직업관료제로부터의 이탈이다.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관료 국가가 되고 말았다. 대통령의 속내가 궁금하다. 관료는 우수한 인재들이지만 영혼이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관료는 수단적 이성(理性)이어서 목적의 정당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공리주의적 계산의 수단적 합리성은 관료라는 국가기구가 맡는다. 목적형성적 이성을 가진 존재는 정부 안에 박 대통령밖에 없다. 국무회의도 아니다. 청와대만이 판단기구다. 실로 위험하다.

그러나 아직은 결론을 유보하자. 오히려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관료 개혁에는 관료만큼 좋은 수단도 없다. 관료에 포위돼 좌초되는 것보다는 스스로 개혁의 피를 흘리도록 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시간도 절약된다. 그러나 기대치는 낮다. 그런 일은 있어본 적이 없다. 관료는 관료를 개혁할 수 없다. 그것은 로봇 3원칙과도 비슷하다. 관료가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야말로 기득권적 토대가 작동하는 덕분이다. 이 점은 대통령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정치 불신 탓일 게다.

부처마다 ‘창조 OO 보고서’와 ‘행복 보고서’를 잇달아 발표하는 것도 능숙한 관료적 수완이다. 지도자는 만족할지 모르지만 그게 얼마나 우스운지 관료들이 더 잘 안다. 노무현 정권 때는 ‘참여 OO보고서’를 썼고 이명박 정권에서는 ‘녹색 OO보고서’를 남발했다. “이번에는 창조닷!”

[정규재 칼럼] 朴대통령의 길었던 지난 한달
‘창조’는 실은 고약한 단어다. 결코 학습되지 않는다. 두뇌가 개선되지 않는 것과 같다. 창조는 의도라기보다는 결과다. 그래서 정치 슬로건이 될망정 정책이 될 가능성은 처음부터 제로다. 언어에도 속성과 구조가 있지만 정부 안에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하겠다고 한다. 어떻든 미래부에는 미래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거대해진 공룡부서에 창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누가 부임하더라도 결재하느라 시간을 다 보낼 것이다. 아마 김종훈은 그것을 눈치채고 미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대통령의 과잉 기대가 걱정스럽다.

경제 민주화는 실로 기만적 언어다. 그것은 경제를 죽이는 정치적 자살 행위의 다른 이름이다. 동기가 순수하다는 것은 통치자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다. 자살기계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수많은 중소기업가들이 더 열심히 정치활동에 몰입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쉽게도 황철주 사장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주성엔지니어링의 주가를 보라! 기업가는 기업가, 공직은 공직이다. 그러나 직분을 설명하는 용어들도 지금 뒤죽박죽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아무도 용어정리조차 안 하고 있다.

단 하나. 누가 뭐래도 지금 보통의 한국인들이 편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박 대통령 덕분이다. 종북이나 혹은 그 사촌들이 정권을 잡았더라면 북한의 점증하는 핵공갈과 함께 국내 정치는 극도의 혼란 속으로 밀려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NLL이 혼란에 빠지고 미국과의 동맹이 흔들리며, 여론은 분열되고 서구행 이민 행렬이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말도 부분적 진실일 뿐이다. 북핵 문제야말로 박근혜 정부의 많은 실수들을 오히려 덮어주고 있다는 것이 반면의 진실일 수도 있다.

정치는 억지로라도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고약한 일이다. 그나마 최악을 피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사치스러운 실망을 떠안게 된 것일까. 이 한 달 동안도 경제는 줄곧 가라앉았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