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국민들이 우리 얘기를 믿어주지 않아요. 대기업 입장만 대변한다고 보기 때문이죠. 이제부터 본연의 할 일은 하면서 국민에게 박수받는 단체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이승철 신임 상근 부회장(54)은 지난 2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전경련은 국민경제를 생각하는 기업들의 모임이 돼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21일 전경련 정기총회에서 상근 부회장에 선임돼 ‘허창수 2기체제’의 전경련 사무국을 이끌게 된다. 이 부회장은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9년부터 줄곧 전경련에서 일해왔다. 전경련 내부 출신이 상근 부회장에 오른 것은 1993년 조규하 전 부회장 이후 20년 만이다.

그는 향후 전경련의 키워드로 ‘변화’와 ‘소통’을 꼽았다. 이 부회장은 “이제까지 전경련이 기업의 의견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데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국민의 의견을 기업에 전달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국민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기업들이 조금 손해보더라도 양보하도록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재벌빵집 문제를 예로 들었다. “작년 초 재벌빵집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셀 때 회원사들에 양보하라고 설득했습니다. 경제논리로만 보면 문제될 게 없지만, 국민 경제와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이 부회장의 이 같은 논리에 대해 재계 일부에서는 전경련이 ‘경제민주화’ 눈치를 보느라 ‘재계의 방패’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국민경제에 이득이 된다는 게 양보의 전제조건이며, 재계 의견이 국민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면 끝까지 국민을 설득하겠다”고 했다.

회원사들의 양보를 끌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에는 “기업과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한번 해보자고 회원사를 설득할 좋은 메뉴를 많이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전경련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방식도 바꾸겠다고 했다. 그는 대형마트-골목상권 갈등 문제를 예로 들면서 “골목상권 문제에 대해 그동안 전경련은 회원사 의견만 들었는데, 앞으론 전경련 전 직원을 재래시장에 보내 하루 동안 직접 일하면서 문제를 파악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회원사뿐 아니라 현장 상인들의 의견도 들어 균형 잡힌 해결책을 찾겠다는 논리에서다. 골목상권뿐 아니라 다른 현안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는 “‘보여주기 이벤트’라는 비판도 나오겠지만 그렇게 해야 전경련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새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선 “낙관적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대기업 때리기’의 강도를 높일 것이란 당초 우려와 달리 순환출자 규제 등을 보면 합리적인 수준에서 공약을 이행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업들은 헌법에 나온 경제민주화의 기본 취지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특정 집단을 손보려는 의도로 (경제민주화 조항을) 남용하는 걸 경계하는 것일 뿐”이라며 “일자리 창출, 투자활성화 등 국민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면 새 정부에 적극 협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의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 부회장은 “전경련은 지금까지 정치권 등 외부 공격에 방어만 하다 보니 매번 ‘그건 안된다’는 식으로 대응해왔다”며 “앞으로는 정부와 정치권에 ‘이런 사업을 같이 해봅시다’라고 먼저 제안하는 아이디어 싱크탱크로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