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 고객이란 누구인가? ‘객(客)’은 손님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고(顧)’는?

질문 2. 영희네 가족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예삐 예방접종을 하러 동물병원에 갔다. 동물병원장의 고객은 누구일까?

질문 3. 영희가 아파서 엄마랑 소아과에 갔다. 고객은 누구일까?


KAIST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IM) 가을학기 열여섯 번째 시간. 김영걸 KAIST 경영대학원 지식경영 교수는 이 같은 질문을 수강생들에게 던지며 강의를 시작했다.

○CRM은 손님을 돌보는 것

“첫 번째 질문의 고(顧)는 ‘돌보다’라는 뜻입니다. 고객이란 말의 개념이 좀 잡히시죠. 두 번째 질문에서 제가 아는 한 병원장은 ‘동물병원이니까 동물이 고객이지’라고 답하더군요. 서비스 대상이 예삐니까 그런 답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예삐를 가장 아끼는 영희가 고객일 수도 있고, 결국 돈을 내는 부모가 고객일 수도 있겠죠. 세 번째 문제를 풀어보면 우리가 오늘 배울 ‘고객관계관리(CRM)’에 대해 좀 더 개념이 잡히실 겁니다.”

학생들은 세 번째 문제에 대해 ‘영희’ ‘부모’ ‘둘 다’ 등의 대답을 내놓았다.

“‘둘 다’가 제가 생각하는 정답입니다. 두 번째 문제 역시 예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고객이죠. 서비스에 대해 의견을 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고객을 물건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죠. 상당히 좁은 개념입니다. 좀 더 넓게 생각해야 합니다. 좀전에 말한 병원장도 고객 개념을 확장한 뒤 고객 데이터베이스(DB)를 동물 기준뿐 아니라 동물의 주인들 기준으로도 구축하고 있습니다.”

○CRM의 키워드, 믿음·파트너십·과정

CRM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다양하다. △고객 DB를 활용한 마케팅 △고객의 성향을 분석한 1 대 1 마케팅 △항공사의 마일리지 프로그램 △통합 콜센터 △통합 고객 정보 시스템 등 기업마다, 산업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단편적인 형태들을 CRM이라고 한다면 ‘시각장애인 코끼리 만지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한 사람은 다리를 만지고 기둥 같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상아를 만지고 맨들맨들하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각 부분들이 코끼리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김 교수는 CRM을 ‘고객과 기업이 상호 믿음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개발하고 유지·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키워드를 ‘믿음’ ‘파트너십’ ‘과정’이라고 제시했다.

○CRM의 출발은 고객 가치 극대화

“모든 CRM은 고객 가치 극대화에서 시작합니다. 먼저 고객이 기업의 물건을 사는 과정을 생각해 보죠. 세상 모든 고객은 항상 두 가지를 비교합니다. 제품의 가격와 제품이 주는 가치죠. 가치가 가격보다 낮으면 사지 않고, 가치가 가격보다 높으면 편안하게 삽니다.”

가격과 가치 가운데 기업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요소는 가격이다.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가격을 내리고, 잘 팔리면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기업이 쉽게 측정하기 어렵다. CRM의 출발이 바로 이 고객 가치라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고객들은 가치에서 가격을 뺀 차이만큼 ‘만족’을 느낍니다. 고객이 어떤 기업과의 첫 번째 거래에서 만족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거래를 할 때도 기업이 새로운 가치를 줘서 매번 만족을 했다고 합시다. 그 고객은 만족에서 이제 ‘감동’의 단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회사는 어쩜 이렇게 잘할 수가 있을까, 대단하다’는 감탄이 나옵니다. 거래를 할 때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결정하는 것이죠.”

○습관적으로 거래 ‘충성고객’을 잡아라

김 교수는 한 기업이 CRM을 잘 하고 있는가 역시 고객 만족도로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이 기업과 거래할 때마다 가치가 가격보다 높은지 따져보느냐, 아니면 지난번 거래처럼 해달라고 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고객을 충성고객이라고 하죠. 기업 자산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충성고객이야말로 최고의 자산입니다. 물건을 살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고객을 소개해주기까지 하니까요. 영어로 고객을 ‘커스터머(customer)’라고 합니다. 물건 사는 사람이라고 하면 ‘바이어(buyer)’라는 말도 있는데 말이죠. 커스터머에는 ‘습관(custom)’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기업과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하지만 지금 대부분 기업들은 고객을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 또는 사용하고 있는 소비자 또는 기업’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한 고객 개념과는 다르죠.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고객의 개념을 뒤집기는 어려운 일이니 이제 새로운 정의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 기업의 제품을 사는 고객은 누구인가

김 교수는 ‘식별 고객’과 ‘핵심 고객’이라는 두 가지 정의를 강의실 스크린에 띄웠다. 식별고객은 기업이 개개인의 정보를 수집·관리해 신상, 구매 내역, 취향 등을 파악한 고객이다. 핵심 고객은 기업과 지속적이고 능동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긍정적인 의견을 내 높은 수익을 내도록 해주는 고객이다.

“기업들은 고객을 잘 알지 못합니다. 롯데가 자일리톨 껌을 누가 사서 씹는지 과연 알까요? CJ가 햇반을 어떤 고객이 주로 먹는지 파악하고 있을까요? 그런 정보는 기업이 아니라 소매업체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정보를 모르니까 그저 열심히 만들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IT(정보기술)가 발전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고객을 식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식별 고객을 만드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매일유업을 꼽았다. 매일유업은 2009년부터 분유통에 일련번호를 넣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일련번호를 기업 홈페이지에 등록하면 2% 마일리지를 쌓아주고 있다.

“2% 마일리지의 힘이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요. 매일유업은 고객의 30%만 마일리지를 입력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현재 등록률은 70%에 육박합니다. 이제 이 회사는 자기 제품을 누가 사는지 어느 정도 식별하게 된 것이죠. 분유를 1년 팔고 말았을 고객들이 이유식, 우유, 치즈 등을 권할 수 있는 평생 고객이 되는 겁니다. 식별의 가치는 이 이 정도로 큽니다.”

○핵심 고객은 수익성으로 찾아야

식별 고객 가운데서도 더 중요한 고객은 핵심 고객이다. 높은 수익을 줄 뿐만 아니라, 입소문을 통해 새로운 고객까지 창출하도록 하는 고객이다.

“기업에 CRM 컨설팅을 하러 가면 가장 먼저 ‘여러분의 핵심 고객을 아십니까’라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핵심 고객을 어떻게 차별화시켜 관리하고 있습니까’를 묻죠. 모든 기업들의 핵심 고객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기업마다 핵심 고객의 기준을 잘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기업들이 매출을 기준으로 고객 등급을 매기고 있습니다. 쉬운 기준이죠. 진짜 핵심 고객은 수익성 기준으로 찾아야 합니다. 고객이 기업에 주는 가치와 기업이 고객에게 줄 수 있는 가치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비교해서 찾아내야죠.”

○고객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라

핵심 고객을 찾은 뒤에는 그 고객을 적절한 방법을 동원해 관리하는 것이 CRM이다. 대표적인 관리 수단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저는 대한항공에서 보내주는 마일리지 안내 이메일을 꼬박꼬박 살펴봅니다. 쌓여 있는 마일리지를 보면서 ‘이제 아내와 함께 유럽에 비즈니스 클래스로 다녀올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부플어 오릅니다. 이런 게 바로 제게 기쁨을 주는 정보죠. 저는 이런 기쁨을 주는 대한항공만 20년째 이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핵심 고객을 대한항공이 과연 알아주는지 의문입니다.”(웃음)

이메일을 보내면 고객들이 모두 감동할 것인가. 실제 많은 이들은 기업에서 보내는 뉴스레터들을 스팸처럼 취급하기 마련이다. 고객이 정말 원하는 정보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객을 그룹으로 나눠서 관리하라

“여러분 회사에서 보내는 이메일들이 어떻게 평가되는지 확인해 보셨습니까? 수신 확인율을 꼭 확인해 보십시오. 확인율이 5% 미만이면 나머지 95%는 그 메일을 보고 짜증이 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인들이 CRM 부서를 뉴스레터 얼마나 많이 보냈나로 평가하죠. 스팸 두 배로 보낸다고 고객과의 관계가 좋아지겠습니까?”

김 교수는 고객들의 이메일 확인율을 높이기 위해선 그룹을 세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웹사이트 등에 회원으로 가입한 고객들의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라는 것이다.

“‘××유업입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과 ‘OO 아기 어머니께’라고 붙은 이메일은 고객이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들의 개월 수로 고객을 구분해 적합한 정보를 담은 이메일은 또 얼마나 잘 먹히겠습니까. 기업이 고객에게 기울이는 관심과 노력이 핵심 고객 수와 비례합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강의 = 김영걸 <KAIST 경영대학원 지식경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