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 철저히 미친 에르되시 팔에게 동료들이 같이 사는 사람들에 대해 묻자 그는 한마디로 하찮은 존재들이라고 일축했다. 세상에 수학을 하는 사람 말고는 별로 대단하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구속을 싫어해 집도, 아내도, 취미도, 직장도 없이 83년의 생을 오직 숫자만 사랑하며 살았다. 그는 수학만을 좋아해 그가 번 돈조차 모두 남에게 주며 오로지 수학의 발전에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그래서 에르되시는 평생 어떤 수학자보다 많은 수학문제를 제기했으며, 공동저술을 포함해 1475편의 논저 대부분이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수학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이 에르되시 얘기를 하는 게 뜬금없지만, 사람마다 삶의 가치가 다르다는 극명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세상에 수학 말고도 우리에게 중요한 학문과 분야는 얼마든지 많다. 최근 대선을 치르면서 사회 각계에서 봇물처럼 다양한 요구가 쏟아지고, 이에 따른 후보들의 공약도 현란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안고 있다. 성장과 분배, 환경과 에너지, 청년실업과 노후대책, 교육과 복지 등 어느 분야도 시급하지 않은 게 없다.

인문학자는 인문학의 위기를 경고하고 인문 정신의 회복을 강조한다. 기초과학자는 기초과학 기반이 취약해지면 응용과학의 발전 가능성이 제한받는다고 걱정한다. 예술가는 정책의 무게 중심이 문화산업에 쏠리게 되면 그 수원지 기능을 하는 순수예술의 피폐를 우려한다. 그렇다고 재정을 무한 확대해 전 분야를 정부가 고루 지원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물론 가시적 성과에 집착해 기초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행돼야 할 일은 분야마다 본연의 역할과 책무를 확인하고 이행하는 일이 아닐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에는 누구나 아는 대사가 나온다.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라네. 그들은 등장했다가 퇴장하지요.” 가정과 사회에서 각기 맡은 배역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막이 내리면 누구나 퇴장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한탄이기도 하지만, 연극 한 편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각자의 배역에 최선을 다하라는 조언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연극배우는 출연작을 고를 때 배역의 크기도 따지고 역할의 매력도 따진다. 그러나 모든 배우가 선호하는 배역을 맡을 수는 없다. 한 평생을 살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맥베스는 말한다. “인생이란 한낱 걸어다니는 그림자, 가련한 배우, 무대 위에 서 있을 때는 활개치고 떠들어대지만 얼마 안 가서 영영 잊혀버리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삶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각자의 배역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실천적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탁월성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리스인이었다.

구자흥 < 명동예술극장장 koo.jahung@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