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저작권(copyright) 문제가 계속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저작권도 재산권인 만큼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생각도 있지만, 한편으론 공유하자는 운동도 활발하죠. 이런 논쟁은 유형 자원과 무형 자원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취급하는 데서 상당 부분 기인합니다. 저작권 문제를 보다 발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최근 창작물 사용 허가(CCL·creative commons license)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자원의 성질에 관한 설명부터 하겠습니다.”

KAIST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IM) 가을학기 여섯 번째 시간. 윤종수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저작권에 대비되는 개념인 CCL을 소개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CCL은 2001년 미국에서 시작된 ‘저작권을 합리적으로 공유하자’는 캠페인이자, 그 캠페인이 새롭게 만들어낸 개념이다. 윤 판사는 2005년 한국에 CCL을 처음 도입한 이 분야의 권위자다.

○‘과소 생산’의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윤 판사는 자원을 성질에 따라 유형 자원과 무형 자원으로 구분했다. 유형 자원은 형체가 있는 모든 재화다. 한 사람이 가지면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배타성이 특징이다. 소유권은 유형 자원의 배타성을 법적으로 보장한 것이다.

“무형 자원은 머릿속에서 나오는, 형체가 없는 지적인 개념입니다. 아이디어가 대표적인 예죠. 성질상 유형 자원과 가장 큰 차별점은 배타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걸 남에게 준다고 해도 나에게 똑같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두 자원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각 자원이 갖는 문제도 다르다. 유형 자원은 소유권을 어떻게 보장해줄 것인가, 즉 자원 배분의 문제가 발생한다.

“‘공유의 비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를 키울 수 있는 초원을 한 마을이 공유한다고 하죠. 마을 구성원들이 저마다 소를 욕심껏 키우다 보면 초원이 황폐해지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유형 자산을 공유하게 되면 이렇게 ‘과다 소비’가 발생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형 재산을 공유해선 안되는 이유로 이 공유의 비극을 제시하곤 합니다. 이건 자원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무형 자원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같이 써도 고갈되지 않는다. 애초에 자원 배분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식과 같은 무형 자원은 모든 사람이 가져도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딱 한 사람, 그 무형 자원을 생산한 사람 빼고요. 애써 만들었는데 나 아닌 모든 사람은 행복한 반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면 아무도 새로운 걸 창조하려고 하지 않겠죠. 무형 자원의 문제는 이런 ‘생산의 문제’입니다.”

○무형 자원은 보상으로 접근해야

유형 자원에서 발생하는 ‘배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개념이 소유권이다. 과다 소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다른 사람이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을 법이 막아주는 것이다.

“무형 자원은 사실 이런 규제가 필요없습니다. 효과는 작고 비용은 많이 들죠. 무형 자원의 ‘생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인센티브’가 필요합니다. 저작권이나 특허권 등은 무형 자원을 창조한 사람들에게 그 자원을 이용해서 돈을 벌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한 권리입니다.”

윤 판사는 이어 강의실 스크린에 ‘허락을 받아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띄웠다. “허락을 받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는 건 전형적으로 유형 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형 자원을 소유권처럼 규율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불거지고 있는 저작권 침해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는 겁니다. 무형 자원은 생산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소비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 문제죠.”

윤 판사는 무형 자원으로 하는 비즈니스의 장점으로 효율성을 제시했다. 휴대폰이나 자동차처럼 새 제품을 만들 때마다 똑같은 재료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 제품을 만들 때 생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점은 불법 복제 등 관리의 어려움이다.

“예전에는 음악을 CD에 담거나 아이디어를 책에 담으면 그나마 관리하기가 쉬웠습니다. CD나 책은 유형 자원이므로 소유권으로 규율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무형 자원이 원래 갖고 있던 성질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됐습니다. 더 이상 유형 자원에 쓰던 규제를 그대로 쓰기 힘들어졌습니다.”

○확대·재생산으로 새로운 무형 자원 생성

무형 자원을 소유권처럼 규제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창의성의 발현을 막는 데 있다. “아이작 뉴튼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멀리 보았다면, 그건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뉴튼이 해낸 수많은 성과들은 그 전 시대 사람들이 해놓은 업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얘기죠. 기존에 있던 창작물이 새로운 창작물의 재료가 되고, 다시 그게 새로운 창작물의 원료가 되는 것이 저작물의 순환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창작물을 다른 사람이 쓰지 못하는 방식으로만 규제하고 있습니다.”

남의 창작물을 쓸 때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으려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일일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윤 판사는 이어 동영상 두 개를 틀었다. 미국 가수 프린스의 ‘렛츠 겟 크레이지’와 손담비의 ‘미쳤어’ 노래에 맞춰 아이들이 춤을 따라하는 동영상이다.

“앞의 동영상은 유튜브에 올라왔고, 뒤의 것은 개인 블로그에 올려진 것입니다. 두 동영상 모두 저작권자의 요청에 따라 내려졌습니다. 결국 소송까지 가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긴 했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싸이가 만약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패러디를 일일이 저작권을 들어가며 막았다면, 과연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은 CCL

“처음 말씀드린 CCL 운동은 이런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무형 자산을 공유재로 봐야 새로운 지적 자원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다는 것이죠. 무형 자원의 본질성과 유용성을 억제하지 말고, 촉진시켜야 ‘거래 비용을 줄이고 생산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 CCL의 핵심입니다.”

윤 판사가 국내에 처음 도입한 CCL 운동과 ‘cc’마크는 점차 세계적인 표준이 되고 있다. 저작권(copyright)을 뜻하는 ‘ⓒ’ 마크 대신 원 안에 ‘cc(creative commons·창작 공유재)’를 넣은 마크다.

구글은 물론 네이버, 다음 등에서도 CCL을 사용하고 있다. 네이버 검색을 예로 들면 ‘이미지 검색’을 할 때 왼쪽 사이드바에 CCL 메뉴를 찾을 수 있다. 일정한 이미지를 쓰고 싶을 때 저작권에 저촉되는지 보려면 이 CCL 메뉴를 클릭해 보면 된다. 저작자 표시(저작자만 표시하면 사용해도 좋음), 저작자 표시·비영리(저작자를 표시하고 비영리 목적이면 사용해도 좋음) 등 여섯 가지 세부 조건이 있으며, 이 조건에 맞게 이미지를 사용하면 된다.

○창작물을 공유해도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저작물을 ‘cc’마크를 달아 공유재로 만든다면 ‘인센티브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2005년 한 인터넷 사이트에 ‘스타 렉(star wreck)’이라는 영화가 올라왔습니다. 스타 트렉의 패러디 영화죠. 제작자들은 이 영화를 무료로 내려받게 했고, 2개월도 안돼 300만건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습니다. 유명세를 타니까 방송국에서도 연락이 왔고, 영화 제작사도 DVD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제작자들은 이 기업들로부터만 돈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취미로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벌려 했다고 합니다.”

윤 판사는 이어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되 수익은 광고 등으로 제3자에게 얻는 방식의 사업 방식 예로 구글, 블로터닷넷 등을 소개했다. 명사들의 강연을 인터넷을 통해 공급하는 TED로 보는 사람은 공짜지만, 강연장 티켓은 장당 6000달러에 달한다.

“최근 에이존이라는 한국 그룹은 자신의 웹사이트에 노래를 무료로 공개했습니다. 수익은 나지 않았죠. 하지만 자신의 팬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요즘 가수들이 음원을 팔아서 수익을 얻기는 점점 힘든 구조가 되고 있습니다. 결국 수익이 나는 건 음반인데, 이들은 음반을 사준 팬을 확보하는 데 창작물을 무료로 공개하는 방식을 도입한 겁니다. ‘어슬렁의 여행드로잉’ ‘소셜웹이다’ 등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기행문이나 수필, 소설 등을 책으로 내기 전에 무료로 배포해 자신을 알리는 작업을 하는 젊은 창업자들도 있습니다. 자신만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인센티브이자, 수익으로도 연결되는 것이죠”

윤 판사는 CCL 운동을 도입한 이후 계속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예전에는 나눔이 희생을 뜻했죠. 내가 가진 걸 포기하고 남한테 주는 거니까요. 하지만 콘텐츠의 나눔은 희생이 아닙니다. 자기가 보상을 얻으면서도 남들에게 줄 수 있는 길이 많아요. CCL 운동을 계속 자원봉사하는 건 아이들에게 ‘저작권 붙은 건 쓰지 못한다’가 아니라 ‘cc 마크가 있는 건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당장 바뀌긴 어렵겠지만, 길게 보면 언젠가는 인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뀔 것으로 기대합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강의=윤종수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