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5세 여성 환자가 다발성골수종이 한참 진행된 후에야 찾아왔다. 피로감이 계속되다가 허리까지 통증을 느끼게 된 게 얼마되지 않았다고 했다. 내과에서 골다공증 진단을 받고 척추전문병원 등을 전전하다가 급기야 최근에는 신장까지 나빠져 투석을 받게 됐다. 이상하다 싶어 정밀검진을 해보니 다발성골수종 3기였다.

다발성골수종은 이름도 낯선 혈액암의 한 종류다. 흔히들 알고 있는 백혈병의 사촌이다. 혈액 속 림프구의 성숙 형태이고 항체를 생산하는 형질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되면서 나타난다. 매우 특이하게도 암세포가 뼈를 공격해 이를 녹이거나 잘 부러지게 만드는 무서운 질환이다.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혈액암 중 2위의 발병률을 보여왔고 국내에서도 3위에 해당하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다발성골수종은 진단이 쉽지 않다. 백혈병은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쉽게 진단되지만 다발성골수종은 혈액암인데도 불구하고 병변이 뼈에 나타나기 때문에 증상이 한참 진전되기까지는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허리, 갈비뼈 통증이 오기 때문에 단순 관절염으로 오인, 최적의 치료시기를 놓치고 병을 키우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다발성골수종으로 인한 사망자는 지난 25년간 무려 33배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 전체 암 사망률이 2.3배 증가한 것에 비하면 놀랄 정도로 높은 수치다. 수술로 완치가 가능한 고형암과 달리 혈액암은 수술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치료제를 통한 치료와 유지요법이 매우 중요한데 환자들이 쓸 수 있는 치료제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몇 년 전 골수이식과 항암제 치료에도 불구하고 다발성골수종이 재발한 50대 남성이 진료실을 다시 찾아왔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N신약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다른 치료제에 대한 내성이나 부작용으로 더 이상 쓸 수 있는 약이 없는 상황에서 그 환자에게 N신약은 절실했지만 월 1100만원에 달하는 비급여 약제비를 감당할 능력이 못된다고 하소연했다. 필자는 “보험급여가 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발성골수종처럼 치료기간이 길고 신약 접근성이 낮을수록 환자들은 특정 신약의 정보를 먼저 알고 약을 처방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정경제에 고통을 줄 만한 고가의 약값 때문에 처음부터 치료를 포기하거나, 자녀에게 부담을 주기 미안해 중간에 치료를 중단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다발성골수종이 발병하면 평균 3년 정도 생존했지만 최근 표적치료제인 N신약이 등장하면서 환자의 생존기간이 2배 이상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미 2년여 전에 시판승인이 났음에도 건강보험 재정상 어려움 때문에 보험 급여가 계속 늦어지고 있다. 최근 N신약을 공급하는 C제약사는 환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 반값 이하로 약가 인하를 결정했다.

신약에 대한 접근성이 봉쇄된다면 다발성골수종 치료는 벽에 부딪친 것과 다름없다. N신약은 최근 발표된 3개의 글로벌 임상 논문과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혈액학회(EHA)를 통해 2차 치료제를 넘어 1차 치료제로서의 유지 치료 효능을 입증했다.

사회경제적 약자가 높은 치료비용 때문에 의료혜택에서조차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시정되길 바랄 뿐이다.

이재훈 <가천대 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