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금융위기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분기에만 140조원이 넘는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구제금융 가능성이 제기되자 불안한 투자자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스페인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위기가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으로 급속히 번지자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 등은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유로본드(유로존 공동채권)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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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스페인’

1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스페인 중앙은행은 1분기 스페인에서 해외로 유출된 자금 규모가 970억유로(약 141조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약 10%에 달하는 돈이 3개월 사이에 빠져나간 것. 스페인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스페인 자산을 처분해 해외로 옮기는 ‘탈(脫)스페인’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자금조달 위험 수위인 연 6% 선을 넘어 지난달 31일 6.56%를 기록했다.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수준으로 여겨지는 연 7%에 곧 근접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라즈 바디아니 IHS글로벌인사이트 이코노미스트는 “(해외 유출 자금 규모와 관련해) 아직 발표되지 않은 최신 수치는 (1분기보다) 더 나빠졌을 것”이라며 최악의 위기(perfect storm)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구제금융설도 흘러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IMF가 방키아 등 스페인 부실 은행들에 부족한 자금을 지원해주기 위한 긴급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IMF는 구제금융설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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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유로본드 압력…버티는 독일

유로존 위기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깊어지기만 하자 유로본드 도입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유로존이 공동으로 채권을 발행하면 재정위기국들은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부담이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졸릭 총재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유로존 경제위기가 신흥국으로 확산되면 글로벌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며 “유로본드 도입 등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현재의 유로존 체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독일은 유로본드가 도입되면 연간 200억 ~ 250억유로의 추가 부담을 져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최근 유로존 위기 해법으로 유로본드뿐만 아니라 은행 규제 공조, ECB 역할 확대, 유로안정화기구(ESM)의 은행 직접 지원안 등이 나오고 있지만 독일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그리스, 스페인이 아니라 아예 독일이 유로존을 떠나는 ‘저멕시트(Germexit·독일의 유로존 탈퇴)’가 유럽 경제에 이로울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