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처럼 성공?…"시장부터 꼼꼼히 공부하라"
“스티브 잡스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엔젤투자자 A씨가 기자에게 해준 말이다. 정보기술(IT) 분야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잡스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가 남긴 유산들과 업계에 미친 영향력을 본다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A씨의 말은 다른 의미였다.

잡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를 독불장군으로 묘사했다. 대중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기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모든 창업가들의 바람이지만 잡스와 같은 방식으로 성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성공하려면 꼼꼼한 사전 시장 조사가 필수적인데 의외로 시장 공부를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시장 조사는 기본인데…”

모바일광고 서비스 애드라떼를 운영하는 정수환 앱디스코 대표는 2010년 10월 해피즌이란 이름의 소셜커머스를 만든 적이 있다. 사회공헌과 소셜커머스를 접목시킨 것이 특징인 서비스였다. ‘선행을 릴레이한다’는 것이 서비스의 모토였지만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1억원의 빚만 지게 됐고 사람들도 떠났다. 정 대표는 “사회공헌에 관심이 많아 이 같은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원하는 사업만 고집하다 보니 금세 운영이 악화됐고 친구들도 잃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후 철저한 시장 조사와 수익 모델 분석을 바탕으로 광고를 보는 이용자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서비스 애드라떼로 재기했다. 정 대표는 “아이템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느냐, 그 모델로 수익을 낼 수 있는냐를 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에 대한 이해와 조사 부족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창업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유지열 서울산업통상진흥원 전임교수는 “벤처 창업자들은 자기 기준에 좋은 물건, 상품만 있으면 시장을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큰 착각”이라며 “시장 타당성을 따져보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잡스처럼 성공?…"시장부터 꼼꼼히 공부하라"
◆“판로를 미리 확보하라”

창업자들이 시장 조사를 게을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디어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자신감은 ‘오판’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한 벤처인큐베이팅업체 관계자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면 지금까지 왜 시장에 나오지 않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대부분은 이미 누군가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것들”이라고 꼬집었다. 이은우 소프트뱅크 수석심사역도 “기존 서비스의 문제점을 대부분 해결했다며 큰소리 치는 창업자들을 만나 보면 아쉽게도 그들만이 체감하는 수준의 개선”이라며 “‘이 서비스를 쓰지 않으면 바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획기적인 아이템이 아닌 이상 기존 시장판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판로’를 미리 확보해야 한다는 충고도 있었다. 동영상 광고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디지털애드의 김도환 대표는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놔도 사용해줄 곳이 없으면 끝”이라며 “치밀한 시장 조사와 마케팅을 통해 고정적인 판로를 만들어둬야 한다”고 전했다. “이걸 못한다면 90% 이상 망한다고 봐도 좋다”고 덧붙였다.

이승우/김보영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