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쌓은건 희망…"이젠 너무 살고싶어"
“5년 전 서울역 길거리에 쓰러져 있을 때는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열심히 살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열심히 저축하면서….”

서울시는 2일 시내 23개 노숙인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1222명의 노숙인 중 저축비율이 가장 높은 70명을 올해의 ‘노숙인 저축왕’으로 선정했다. 노숙인 자활센터인 서울시립 영등포 ‘보현의 집’에 거주하는 김남우 씨(47·가명)는 올해 노숙인 저축왕 중 1위를 차지했다. 90%가 넘는 월 저축률에 누적 저축액도 1위였다.

15년 전만 해도 그는 한때 월평균 매출이 5000만원을 넘을 정도로 잘나가는 인쇄업체 경영인이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일감이 줄어들면서 회사는 자금난에 시달렸다. 운영자금을 얻기 위해 투자자들을 쫓아다녔지만 거부당하기 일쑤였고, 회사문을 닫았다.

좌절한 김씨는 한동안 술로 세월을 보냈다. “하루종일 술 마시고 빈병을 팔아 또다시 마셨습니다.” 알코올에 찌든 채 서울역 거리를 전전하던 김씨는 결국 2007년 겨울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눈을 뜬 곳은 서울의료원의 병실. 김씨는 아직까지도 당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병실에서 깨어나자마자 펑펑 울었습니다. 나를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왜 살려냈냐고요.”

삶을 포기했던 그를 다시 일으킨 사람은 ‘보현의 집’ 사회복지사들이었다. “당신이 앞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이 50년입니다. 저축을 하면서 희망을 가지세요. 한 달에 20만원만 차곡차곡 모으면 임대주택도 지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들의 설득에 김씨는 새 출발을 다짐했다. 영등포 주변 상가의 고철과 빈병을 모아 매월 20만원씩 저축했다. 여기에다 건강을 회복한 후 건설일용직에도 자주 나가면서 일당을 차곡차곡 모으자 저축액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매월 90% 이상을 저축한 결과 김씨가 지난 3년 동안 모은 돈은 2000만원을 넘는다. 지금은 일용직 운수업에 종사하면서 저축액을 불려간다.

지난해 4월 강동종합사회복지관의 자활센터에 입소한 이강호 씨(46·가명)도 자활에 성공한 경우다. 이씨도 시가 이번에 선정한 70명의 저축왕 중 톱7에 포함됐다.

그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고덕동 66.1㎡(20평)짜리 아파트에서 부인, 딸과 함께 살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학원 강사로 월 300만~400만원의 일정한 수입도 있었다. 하지만 주식에 손을 댔던 게 화근이었다. 8개월 만에 1억원 전 재산을 날렸다.

집을 나와 PC방 등을 전전하던 이씨는 자살 생각까지 했다. 그는 “유서를 쓰고 23층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지만 딸의 얼굴이 어른거려 차마 뛰어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죽을 용기도 없다’고 자책하며 길거리를 배회하던 이씨는 경찰관의 눈에 띄어 자활센터에 입소했다.

이곳에서 그는 막노동으로 다시 시작했다. 일당은 8만~10만원. 1주일에 6일 일하고 담뱃값을 제한 돈 전부를 저축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아 이씨는 쉼터에 들어간 지 1년9개월 만에 총 1950만원을 저축했다. 빚 600만원도 다 갚았다.

김씨는 “노숙인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주는 이 사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회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라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노숙인들에게 조언했다. 이씨도 “본인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실현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노숙인들에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강경민/심성미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