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알고리즘 트레이딩 회사들이 국내 옵션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60% 이상에 달할 것이란 게 업계의 추정이다. 올 한 해 올린 수익만 3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증권사를 비롯한 국내 투자자들은 뒤늦게 알고리즘 트레이딩 관련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수익을 내기가 녹록지 않다.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옵션시장이 외국계 컴퓨터 알고리즘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카고의 ITS가 선봉

'외국계 알고리즘' 놀이터 된 옵션시장
외국계 알고리즘 트레이딩의 선봉에는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ITS가 있다. ITS는 싱가포르에 지사를 두고 국내 부국증권 등과 주문전용선(DMA)을 연결, 옵션 트레이딩을 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거래량을 기준으로 ITS의 시장점유율이 3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하루 평균 옵션 거래량이 1400만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400만건 이상이 단일 회사를 통해 나오고 있는 셈이다.

파생상품시장 관계자는 “ITS는 올 들어 매달 최소 100억원 이상, 올 한 해 1000억~1500억원을 국내시장에서 벌어간 것으로 분석된다”며 “ITS는 엄밀히 말하면 수수료를 받는 주문체결 회사이며 해당 시스템을 이용해 돈을 번 주체가 누구인지는 국내에서 파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2008년만 해도 20% 정도에 불과했던 옵션시장의 알고리즘 트레이딩 점유율은 지난해부터 크게 증가했다.

◆국내 투자자는 흉내도 못 내

외국인들이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주로 구사하는 전략은 ‘마켓메이킹 전략’이다. 호가를 옵션시장에 깔아놔 유동성을 일으킨 뒤 ‘고빈도매매(HFT)’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수익을 창출하고 리스크를 제어하는 알고리즘과 체결 속도를 향상시키는 하드웨어가 결합된 형태다.

한화증권과 대신증권 등이 알고리즘 트레이딩 관련 팀을 구성했지만 마켓메이킹 전략은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 옵션시장에 호가를 까는 데만 1000억원이 넘는 투자자금이 들어간다.

시스템상으로도 차이가 있다. ITS의 주문처리 속도는 3밀리세컨드(1ms=1000분의 1초)로 코스콤의 주문체결시스템(17ms)보다 5배 이상 빠르다.

외국계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독주하면서 이를 이용하지 않는 투자자들은 옵션시장에서 차츰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등 국내 증권사들은 뒤늦게 대응에 나섰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국내 투자자들의 알고리즘트레이딩 능력이 외국계를 따라잡는 데는 5~10년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국내 옵션시장은 외국인의 ‘현금인출기’가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 알고리즘 트레이딩

algorithm trading.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해 주식 및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기법. 일정 조건이 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주문을 진행하도록 한 시스템트레이딩에서부터 전략까지 컴퓨터가 설계하는 고차원 알고리즘 트레이딩까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