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비자원이 전국 7개 야구장에 대해 700명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서비스만족도가 낮다는 결과를 어제 발표했다. 노후된 야구장이 많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고,야구장 서비스 개선을 촉구하려는 소비자원의 의도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설문조사의 부실이다. 소비자원은 7개 야구장에서 각각 100명을 표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야구장 만족도를 비교하려면 여러 곳을 두루 다녀본 이용자들을 조사했어야 맞지 않을까. 지방의 거주지 한 곳만 다녀본 이용자들의 주관적 평가를 비교한다면 의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소위 표본추출의 오류라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와 민간 할 것 없이 부실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부실한 주장을 내놓거나 정책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값 등록금에 대한 설문도 그런 경우다. 등록금이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렇다'는 답변이 절대적일 것이란 점은 짐작키 어렵지 않다. 횟집에서 회를 좋아하느냐고 묻는 것과 진배없을 것인데,이것을 국민 여론인 양 포장하는 게 정치권의 행태다. 시민들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등록금의 절반을 대주는 데 찬성하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딴판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의도에 따라 표본을 설정하고 정답을 유도하는 설문조사도 부지기수다. 경찰청은 지난 5월 치안만족도 조사를 실시하면서 홍보 브로셔에 설문을 첨부하거나 모범운전자회 자율방범대 등 협력단체들에 설문을 돌려 구설에 올랐다. 올초 의정부시의 금의 · 가능지구 뉴타운 주민 설문조사에선 표본오차 범위가 명확치 않았고,특히 금의지구 토지소유자 표본이 15가구에 불과해 시비가 붙었다. 강원도 교육청은 지난해 고교평준화 여론조사에서 주민 71.5%가 찬성했다고 발표했으나,반대 측 주민들은 평준화를 주장해온 교수에게 용역을 맡기고 연구기관을 선정했다며 무효를 주장했다.

심지어는 왜곡이나 조작도 많은 것 같다. 도로공사는 몇 해 전 직원들이 대거 일반인을 가장해 고객만족도 설문에 답해 공기업 경영평가 1위가 됐고,전 직원이 성과급 510억원을 받았다. 서울과 인천의 몇몇 구의회 등에선 의정비를 올리기 위해 가짜 주민을 설문에 참여시키거나 문항을 조작했다. 보건복지부와 식약청은 설문조사로 성과 부풀리기를 했다가 감사원 감사에 적발됐다. 이런 사례는 끝이 없을 정도다.

부실한 정책일수록 엉터리 설문조사를 근거로 제시하는 게 상례다. 수많은 정책들이나 정치적 갈등이 설문조사 결과에 좌우되고 증폭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대가는 국민 혈세와 소비자들의 불필요한 비용 부담이다. 부실한 설문조사가 도덕적 해이이자 업무상 과실이라면,설문조사 왜곡은 배임이요 범죄다. 새빨간 거짓말보다 더 나쁜 것은 사실인 양 포장된 통계라는 말이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