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 포장 좀 해주세요. 저 그리고…깍두기는 새 독을 헐어서 좀 담아주실 수 있을까요?"

손님 K씨의 요구에 사장님은 "아 제사상에 올리시려고요?"라고 되물었다.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곰탕을 제사상에 올리다니…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지만 70년 전통의 하동관 곰탕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생전에 하동관 곰탕의 맛을 좋아하셨던 K씨의 아버지. 심지어 작고하시기 전날까지도 하동관을 찾아 한그릇 비우고 가실 정도였다.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해마다 제사날이면 곰탕 한그릇을 상에 올린다.

그 흔한 생강 마늘도 쓰지 않고 오로지 한우 암소고기와 내장에서 우러나는 간결하면서도 풍격 있는 맛.

놋그릇에 담아내는 맑고 담백한 탕국에 깍두기 달랑 한가지.

이 간결하지만 품격있는 맛에 점심시간이면 잰걸음으로 서둘러가도 이미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하동관의 가장 큰 특징은 저녁 장사를 절대 하지 않는다는 점.

하루 반나절을 끓여 만든 탕은 중탕, 재탕 없이 다 팔리면 문을 닫는다.

서울 소문난 맛집에 수십년간 이름을 올리면서 그간 거쳐간 인사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제주도까지 공수해갈 정도로 단골이었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이회창 총리 등 정계 인사는 물론 연예계 인사들도 자주 찾곤한다.

두산, SK, 하나은행 등 재계 총수들의 입맛도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직원이 귀띔해준 바에 의하면 며칠 전에는 배우 이영애 씨가 남편과 함께 다녀가기도 했다.

특히 박용만 회장은 출장중이던 지난 7일 상파울루공항에서 하동관 곰탕이 그립다는 트윗을 남겨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렇게 각계 각층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하동관만의 비법은 과연 무엇일까.

김희영 사장과 함께 자리한 종업원은 "사장님은 곰탕을 돈버는 수단이 아닌 작품으로 생각한다"고 치켜세웠다.

김 사장은 "외국 나갔다가 공항에서 바로 우리집을 들러 한그릇 비우고 가는 손님들을 생각하면 너무 고맙고 오로지 정직하게 좋은 재료만 가지고 만드는 것 뿐 다른 비결은 없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명동 소문난 맛집 사장님의 재테크는 어떨까.

부동산보다는 은행권 예금 등을 선호한다는 김 사장은 "사실 집안 사정상 그동안은 돈을 모을 수 없었다"면서 "이제는 돈을 좀 모아 좋은 일에 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실 김 사장은 서울대병원 안규리 교수팀에 지난 2007년 1억원을 기부한걸 시작으로 해마다 거액의 후원금을 지원해 오고 있다.

"남편이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떴는데 당뇨병으로 인한 신장 췌장질환을 연구하는데 써달라고 당부했다"는 후원 동기를 아울러 전했다.

한국 고유의 맛을 이어가고 있는 하동관은 자부심도 높다. 가게 안에는 요즘 흔한 맛집 광고 한장 붙어있지 않다.

"맛집 섭외 들어와도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는 김 사장은 "영리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곰탕 고유의 맛을 이어나가는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런 이유로 그 흔한 분점도 하나 내지 않고 심지어 간판만 달게 해주면 수억을 주겠다는 제의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것.

"명동에서 일본어 메뉴판 없는 식당은 우리 가게밖에 없을거에요"라 말하는 김 사장의 웃음에서 세월의 향기와 맛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한경닷컴 이미나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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