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동산 때문에 가평 땅이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민심도 아주 흉흉해졌어요. "

경기 가평군 상천리 수리재공인중개사무소의 박제희 공인중개사는 9일 검찰 수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가평 일대의 기획부동산 실태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박 중개사는 "기획부동산 업자들이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을 호재 삼아 쓸모없는 땅을 집 지을 땅이라고 속이고 수십,수백 개로 쪼개 비싼 값에 팔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난달 군청이 압수수색당하고 군수가 구속되더니 이젠 군의회 전(前) 의장과 말단 공무원,전 지방국세청장까지 붙잡혀 가 민심도 흉흉하다"고 전했다.

이날 찾아간 경춘선 복선전철 상천역 인근의 한 임야도 기획부동산이 휩쓸고 간 곳이었다. 대부분 경사도가 30~45도로 가팔라 서있기도 힘들고 나무가 많아 임야 외에 다른 용도로의 사용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일부 평탄한 땅에는 베어진 나무와 새로 심어진 듯한 나무가 눈에 띄었다. 인근의 한 교회 수양관에 있던 주민은 "업자들이 농림지인 이곳을 주택지로 불법 전용했다가 취소된 뒤 나무를 다시 심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를 검색한 결과 김모씨 등 2명이 소유하고 있던 이곳 1만4000여㎡ 땅은 2009년 9~10월 기획부동산 업체 A사가 16억여원에 인수했다. A사는 이곳 땅을 80~100㎡ 넓이씩 174개로 쪼개 지난해 4월께부터 12월까지 100만~1000만원을 받고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투자자들은 서울 강남 · 강북과 경기도 분당,화성,군포,파주 등 수도권에서부터 경북 상주,김천,전라북도 부안 등 전국에서 모였다.

검찰에 따르면 A사는 가평이나 강원도 춘천에서 땅을 매입해 군청으로부터 토지분할 허가를 받은 후 텔레마케터 50명가량을 고용해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상천역 인근 산지의 경우 "전철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초역세권이어서 지목이 산이든 밭이든 모두 개발된다" "복선전철이 2010년 12월 개통되면 5000만원 정도의 투자로 5억원을 벌 수 있다"고 광고했다. 산지 인근 도원가든의 배연숙 씨는 "작년 여름 서울에서 한 여성이 찾아와 자신이 투자한 땅의 위치를 묻기에 알려줬는데 길도 나 있지 않은 꼭대기 땅인 것을 확인하더니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고 말했다.

상천3리의 박상엽 이장(54)은 "몇 년 전부터 전원주택이나 펜션 부지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아졌고 전철이 생긴 뒤 더 늘었다"며 "최근 몇 년 사이에 가평군청 앞에만 측량 · 설계 사무소가 수도 없이 들어섰는데 그 사람들이 뭘 먹고 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주말에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업체 직원들이 양복을 입고 대기하다가 투자자가 오면 1 대 1로 따라다니며 설명을 한다"며 "그 사람들의 설명을 듣고 다니다 보면 넘어갈 수밖에 없겠더라"고 전했다.

기획부동산 업체들은 단순 사기에 머물지 않고 토지분할을 위해 뇌물 등 중범죄까지 저지르고 있다. A사 사장인 조모씨는 D측량설계공사 사주 김모씨에게 토지분할 허가를 위임하고 군청 공무원에게 주도록 1억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송삼현)는 김씨를 제3자뇌물취득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조씨의 혐의를 추가로 캐고 있다.

검찰은 또 이날 기획부동산 업체 T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홍태석 전 경기도 가평군의회 의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홍 전 의장은 2009년 6월 가평군의회 의장 사무실에서 T사 부사장인 한모씨 등으로부터 '가평군청으로 하여금 T사가 매입한 가평군 토지와 관련해 진입도로 개설 예산을 편성하게 하고 가평군의회에서 이를 심의 · 확정해주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현금 1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앞서 이진용 가평군수를 구속기소하고 전직 지방국세청장 권모씨를 소환조사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지금 가평은 기획부동산 척결에 나선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들의 활동무대가 되고 있다.

가평=양준영 · 이현일/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