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화금고를 생산하는 선일금고제작의 김영숙 대표(56)는 "남편이 쓰던 낡은 칠판을 버릴 수 없어 큰 딸 사무실에 걸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인 고(故) 김용호 회장이 회사에 남긴 유품이라곤 달랑 칠판 하나가 전부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칠판을 보면 남편 기억에 나약해지는 자신을 이겨낼 수 없어 큰 딸인 김은영 상무(34) 사무실에 걸어뒀다. 아버지와 함께 생산현장에서 부대낀 큰딸에게 아버지의 '장인정신'이 고스란히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김 상무는 "아버지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을 접하고 병원에 달려가 울지도 못했다"며 "슬퍼할 겨를도 없이 회사 살림을 챙기느라 어머니,여동생과 장례기간 중에도 회의를 해야 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차녀 김태은 차장(32)은 "자식들에게 항상 따뜻한 웃음으로 대해주시던 어머니는 아버지 사망 이후 매서울 정도로 언니와 제게 일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회사가 잘못돼 남편을 욕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김 대표는 '금고도 가구다'라는 컨셉트로 '루셀(LUCEL)'을 론칭해 가정용 고급 금고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키워냈다. 남편이 사망하던 해 97억원이던 매출이 올해엔 300억원(수출 1500만달러)을 바라보고 있다. 생산 품목은 100여개,수출국은 100개국이 넘는다.

◆금고밖에 몰랐던 창업주

한국전쟁 고아 출신인 고 김 회장이 회사를 창업한 때는 1973년.배운 게 없어 쇳조각을 잘라 붙여 금고를 만들었다고 가족들에게 틈만 나면 얘기를 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여행 한번 간적이 없고 휴일도 제대로 쉰 적 없이 금고 개발에 매달려온 그는 금고의 3대 인증인 UL(미국) SP(스웨덴) GOST(러시아)를 모두 따낼 정도의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금고 개발을 위해 매일 자정을 넘겨 귀가하기 일쑤였다. 김 회장이 사망한 2004년12월 그날도 자정 무렵까지 금고를 만들고 귀가한 뒤 옷을 갈아입고 송년모임에 가던 중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김 대표는 "남편이 집을 나간 지 20분쯤 지나 전화벨이 울려 받았는데 교통사고로 남편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고 털어놨다. 김 회장이 만든 금고는 동종(銅鐘)이 녹아내렸던 2004년 4월 낙산사 화재에서도 금고 안에 넣어뒀던 내용물이 안전하게 보관됐을 정도로 멀쩡했다. 김 대표는 "가족여행 한번 제대로 못가고 처자식보다 금고에 미쳐 살아온 남편이 얄밉기까지 했다"며 "철판에 베어 상처투성이인 손을 보면 안쓰러웠다"고 회상했다.

◆비아냥 듣기 싫어 억척같이 일한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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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세무서 공무원이던 김 대표가 김 회장과 결혼한 때는 1976년.이때부터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남편을 도와 회사 경리업무를 보면서 내조해왔다. 김 대표는 "그때 어깨너머로 일을 배운 게 혼자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서 큰딸에겐 금고 제작을,작은딸에겐 마케팅을 가르친 남편에게 감사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억척스럽게 회사를 키웠다. 대표이사를 맡은 후부터 휴일도 없이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생산 현장부터 챙겼다. 제품에 약간의 불량만 생겨도 해머로 그 자리에서 부서뜨렸다. 김 대표는 "남편이 사망하자 국내외 거래처 등에서 여자들이 회사를 어떻게 경영하느냐며 조만간 망할 것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며 "그럴 때마다 더 독하게 일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해외 거래처 발굴을 위해 외국에도 자주 나갔다. '이글세이프(EAGLE SAFES)' 브랜드를 내세워 수출국을 남편 생전 80개국에서 100개국으로 확대했고 금고 모델도 80개에서 100개로 다양화했다. 2007년엔 중국 장쑤성 쓰촨에 공장도 세웠다. 김 대표는 사무실에서나 사용하는 정도로 여겼던 금고를 집집마다 두는 '생활가구'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2006년 직원들과 공장의 식당밥을 먹어가며 30억원을 들여 개발한 가정용 금고 '루셀'이 대표작이다.

◆현장 지키는 큰딸,영업 누비는 작은딸

루셀 개발을 주도한 것은 장녀 김 상무다. 고려대 제어계측공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 입사한 김 상무는 연구 · 개발(R&D)과 생산을 도맡았다. 어머니와 생산현장에서 살며 '생활가구 같은' 디자인 개발에 매달렸다. 김 상무는 "어머니가 도중에 포기했더라면 지금의 루셀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개발 과정에서 때려부순 완제품이 수십 개"라고 소개했다. 그는 "입사 초 3개월 동안 설계 · 용접 · 내화재 충전 · 판매까지 혼자할 수 있도록 아버지한테 혼나면서 배운 게 지금 제조현장을 지키는 힘이 되고 있다"며 "당시엔 아버지를 원망도 했는데,이젠…"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2002년 이화여대를 졸업한 차녀 김 차장은 마케팅을 맡았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대학원 입학을 포기하고 영업현장을 누벼야 했다. '루셀' 판매를 위해 백화점을 매일 찾아가고 해외 바이어를 만나기 위해 매달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김 차장은 "처음엔 여자라고 무시당했지만 백화점 특판행사에서 하루에 50여대를 팔고 백화점 입점 확답을 받았을 땐 기쁜 나머지 어머니를 끌어안고 울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엔 에스원과 협력 관계를 맺고 6000여대를 공급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두 딸들이 잘 해주고 있다"며 "올해는 내달부터 중국 전담팀을 만들어 '루셀' 금고의 중국 내수시장 공략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주=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화제뉴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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