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 상권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금강제화 뒷골목에는 주점이 몰려 있다. 수많은 주점 중 번호표를 받고 바깥에 수십명이 매일 대기하는 유별난 가게가 있다. '맛있는 수다'란 주점이다. 매장 안에는 여성이 훨씬 많다. 술 마시는 것보다 수다 떨기에 적합한 가게란 생각이 들 정도다. 경쾌한 음악과 매장을 가득 채우는 수다가 뒤엉켜 가게 안은 열기,그 자체다. 홀과 주방을 합쳐 330㎡(100평)에 이르는 이 주점을 운영하는 김병근 대표(38).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를 연상케 하는 김 대표는 이곳 직원들에게 형님,아저씨,오빠 등으로 불린다. 사장이란 딱딱한 호칭은 금물.직원들은 김 대표를 혈육처럼 따른다. 고용자와 피고용자란 대칭관계는 찾아볼 수 없다.

김 대표는 현재 이 주점을 비롯 종로의 '화려한 이야기',안양 범계동의 '오키나와''비치클럽' 등 3개의 주점을 더 보유하고 있다. 상호는 다르지만 수작요리주점이란 컨셉트는 똑같다. 10년 전인 2000년 안양 범계역 상권에서 오키나와를 시작한 게 출발점이다. 그는 "20대부터 사업을 시작해 1990년대 중반 한 달에 400만원씩 수입을 올렸는데 지출의 절반이 술값으로 나갔다"며 "술값 지출을 줄일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술집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시작한 게 오키나와 주점이다. 기질이 애주가인 데다 천성이 사람을 좋아해 주점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맛있는수다는 2007년 6월 개점했다. 홀에 손님이 꽉차면 150여명이 앉을 수 있다. 오후 7시가 넘으면 자리는 모자란다. 번호표를 들고 2층 문 앞에서 수십명이 대기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오전 7시에 문을 닫지만 새벽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특이한 것은 손님 90%가 단골이라는 점.그것도 다 이유가 있다. 만족한 마음으로 일하는 직원들이 손님들에게도 가족처럼 대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많은 가게 특성상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 손님에게는 무릎담요를 갖다준다. 과음한 여성들이 있는 식탁에는 주문해도 술을 내오지 않는다. 많이 취한 여자 손님은 택시를 잡아주기도 한다.

손님이 많은 덕분에 종업원도 많다. 주방에 7명,홀에 4명 등 정규직원만 11명이다. 여기에 비정규직인 아르바이트생 7명이 홀 서빙에 동원된다. 밤샘 영업 탓에 직원들은 3교대로 일한다. 집이 먼 직원들을 위해 김 대표는 인근 오피스텔 1채를 임대했다. 하루 3~4시간을 출 · 퇴근에 허비하느니 오피스텔에서 푹 쉬고 가게 일에 전념하라는 뜻에서다. 이처럼 김 대표의 직원 사랑은 유별나다. 이 때문에 4개 점포를 통틀어 30여명의 직원 중 창업 초기부터 함께한 10년 근속 직원이 2명이나 있고,평균 근무 기간은 6년 이상이다. 몇 개월을 주기로 직원이 바뀌는 주점의 일반적인 관행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 배경에는 김 대표가 직원들에게 심어주는 비전이 큰 몫을 차지한다. 실제 직원 중 1명은 독립해 주점을 차렸다. 이 점포가 성공할 때까지 김 대표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김 대표는 "단골 손님의 험담이 10% 정도 가게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면 직원의 험담은 200% 영향력을 미친다"고 말한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