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말 경북 안동에서 첫 발생한 구제역의 전국 확산으로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피해 규모가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뒤늦게 나섰지만 구제역은 이미 정부가 컨트롤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는 평가가 많다.


◆직접 피해액만 1조원 넘어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6일 현재 구제역 발생은 6개 시 · 도,42개 시 · 군의 91건으로 늘어났다. 살처분 대상 가축은 하루 사이에 12만2000여마리 늘어난 총 94만8364마리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살처분 시가 보상액만 6000억원을 넘어섰다.

백신 접종 대상도 7개 시 · 도,55개 시 · 군의 소 98만9293마리로 증가했다. 조만간 돼지 접종까지 이뤄지면 백신 비용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단가 600원 정도인 백신 150만마리분(9억원 규모) 가운데 123만마리분을 벌써 사용했다. 추가로 단가 1100원 정도에 250만마리분(27억5000만원)을 들여오는 등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지자체가 동원하고 있는 방역 장비와 인력 등의 비용도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최근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은 지역에 대한 차단 방역을 위해 351억원의 예산을 긴급 배정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직접 피해액은 1조원이고 경기 침체 등의 간접적인 피해까지 감안하면 그 규모는 2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실 대응이 사태 키워

구제역 피해 규모가 한 달여 만에 조 단위 가까이 급증한 데에는 정부의 부실 대응이 결정적이었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무조건 살처분 매몰하는 대처법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사육 소는 335만2000마리(한 · 육우 292만2000마리,젖소 43만마리),돼지는 988만1000마리다. 이 가운데 소 2.8%,돼지 8.5%가 벌써 매몰됐다. 벌써부터 더이상 매몰할 장소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군용지라도 쓸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안락사 약물이 동이 나 생매장이 이뤄지면서 토양과 식수 오염도 심각하다.

백신 접종 역시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처음에는 소에 대해서만 접종키로 했다가 뒤늦게 돼지까지 확대키로 방침을 정했다. 소만 접종해서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백신 물량 역시 충분히 확보해 놓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수입에 나서고 있지만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백신을 맞고도 구제역에 걸리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한참 늦은 총력 대응

구제역에 따른 쇠고기와 돼지고기 값 급등이 현실화되면서 물가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가 단언한 올해 '5% 성장과 3% 물가' 달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정부는 이날 이 대통령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기존 대책을 강조하는 수준에 그쳤다. 아직까지 정확한 발생 원인과 경로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황인 데다 구제역이 퍼질 대로 퍼진 지금에 와서 마땅히 내놓을 방안도 없는 상황이다. 진작부터 총력전을 펼치지 않은 정부에 대해 축산농가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구제역이 가져온 재정과 물가 부담 때문에 올해 경제운용 목표를 수정해야 할 지경까지 왔다"고 지적했다.

농식품부도 이날 법무부 및 관세청과 합동으로 국경검역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부랴부랴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어서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신고를 강제하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은 여 · 야 대립으로 아직까지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