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화동에 사는 직장인 A씨는 2008년 8월 125㎡형(공급면적 기준) 아파트를 5억2800만원에 계약했다. 구입 자금이 부족해 대출이 필요했던 그는 고정금리로 할지 변동금리로 할지 망설였다. 고정금리는 변동금리보다 다소 높지만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부담이 없다. 금융 당국에서도 고정금리 대출을 받을 때 총부채상환비율(DTI) 한도를 늘려주는 등 정책적인 지원을 해줬다.

때마침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장 금리와 환율은 계속 올랐다. 그는 고정금리를 선택했다. 주택금융공사와 국민은행을 통해 15년 만기,연 7.35%의 금리로 3억원을 대출받았다. 연소득 3800만원 정도였던 A씨가 대출 가능한 최대 금액이었다. 매달 내는 이자만 183만원이었다. A씨는 "지금 어떤 시중은행을 가더라도 연 4% 초반에 주택담보대출(변동금리)을 받을 수 있는데 괜히 고정금리를 들었다가 손해가 막심하다"며 후회했다.

◆장기화되는 초저금리 시대

한국은행은 A씨가 계약할 당시 연 5.25%였던 기준금리를 불과 수개월 만인 2009년 2월 연 2.0%까지 떨어뜨렸다. 시장금리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한은 자료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의 가중평균 금리는 2008년 연 7.0%에서 지난 8월 현재 연 4.8%로 뚝 떨어졌다.

국내 고정금리 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기본형)'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공사 측은 2008년과 2009년 보금자리론 금리를 각각 4차례와 3차례 인하했다. 2008년 10월 연 7.7%(15년 만기 · T보금자리론 기준)까지 올랐던 금리는 지난 6월 연 5.8%까지 내려왔다. 지난 7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자 공사는 보금자리론 대출금리를 지난 8월1일 0.2%포인트 올렸으나 이후 초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임에 따라 대출금리 인하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

◆소수파의 서러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각국 정부의 위기극복 노력으로 금리가 빠르게 하락한 것은 금융 당국으로서도 예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한은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일본 중국 등 각국 정부가 공조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통화 팽창 정책을 취하면서 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며 "경기 불안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각국 정부가 금리 인상 등 출구 전략을 본격 가동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한국은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매우 커 정책당국이 금리를 쉽사리 올리기 어려운 구조다. 금감원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지난 6월 말 주택담보대출 잔액의 92.7%(273조2000억원)가 변동금리형 대출이었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 파산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는 정책을 결정하는 데 커다란 압박이 되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변동금리를 쓰고 있기 때문에 금리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대마불사'의 논리가 형성되면서 소수파인 고정금리 대출자들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수수료 부담으로 갈아타기 쉽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중도상환 수수료다. 고정금리 대출 실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택금융공사는 경과기간에 따라 중도상환 수수료로 △1년 미만은 대출액의 2.0% △1년 이상~3년 미만은 대출액의 1.5% △3년 이상~5년 미만은 대출액의 1.0%를 부과하고 있다. 대출받은 지 5년이 지나면 중도상환 수수료가 없다. 현재 부담하고 있는 이자율과 전환했을 때 적용받는 이자율을 비교할 때 중도상환 수수료를 감안해야 한다.

집값 하락 등으로 대출 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A씨는 당시 국민은행 시세였던 5억500만원을 기준으로 대출 한도를 계산했지만 현재 기준으로 하면 4억8000만원에 그쳐 대출 한도가 2억8800만원으로 깎인다. 대출받은 3억원과의 차액인 1200만원을 현금으로 내야 한다. 앞으로 집을 얼마나 갖고 있을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보유 기간이 짧으면 금리 전환에 따른 이익은 줄어들고 수수료만 부담하게 된다.

주택금융공사는 현재 고정금리 상품인 'T보금자리론(기본형)'을 변동금리 · 고정금리 혼합 상품인 'U보금자리론(설계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U보금자리론의 금리는 연 3.99%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