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 "태식이의 언어는 액션…몸으로 억눌린 분노 표현했죠"
'톱스타' 원빈(33)의 연기 이력은 독특하다. 누구보다 많은 '오빠부대'를 거느리고 있지만 정작 멜로물은 거의 없다. 방송 드라마 '가을동화'(2000년)에서 송혜교를 짝사랑하는 청년으로 '한류스타'가 된 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우리형'(이상 2004년) '마더'(2008년) 등에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동생과 아들 역할을 했다.

이정범 감독의 신작 '아저씨'(4일 개봉)에서는 지금까지의 배역 중 가장 강인한 남자 역을 맡았다.

어린 소녀를 구하기 위해 장기밀매 조직에 침투하는 차태식이란 인물이다. 시사회를 지켜본 박찬욱 감독은 "마지막 결투 신은 한국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라고 극찬했다. 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원빈을 만났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차태식이란 인물이 궁금했습니다. 액션 드라마이면서도 아이와 소통하는 모습이 가슴에 와 닿았죠.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납치된 소미를 구하는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태식이 소미에게 구원받는 스토리죠.그런데 태식의 언어는 액션입니다. 말보다는 몸으로,억눌린 분노와 절박감도 언어가 아니라 몸짓으로 표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액션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세졌습니다. "

그의 액션은 동남아 무술 필리피노 칼리,아르니스,브루나이 실라트 등 3가지를 혼합해 만들었다.

"특수요원들이 사용하는 무술이죠.공격을 당했을 때 반사적으로 적을 제압하는 무술이기 때문에 간결하면서도 손을 많이 씁니다. '엽문'의 영춘권에서 비롯됐다고 해요. 저는 실전 무술을 영화 액션으로 바꾸는 데 신경썼습니다. 리얼리티는 기본이지만 영화에서는 멋과 절도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죠."

마지막 장면은 이런 멋과 절도가 가장 잘 표현된 하이라이트다.

"13 대 1의 대결 장면을 '원테이크'(한 번 촬영)로 찍었습니다. 태식이 13명을 때려 눕히는 모습을 두 대의 카메라로 5~6차례 반복 촬영했지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주인공이 칼을 들고 싸우는 장면이어서 위험하기도 했어요. 칼은 촬영용 소품이지만 날카로워 살갗에 닿으면 상처를 입습니다. "

골프장 그물로 떨어지는 와이어 액션도 소화했다. "와이어 액션 신은 처음이었어요. 와이어를 감고 5층 건물 높이에서 골프장 그물로 떨어지는 장면이었죠.위험했습니다. "

그는 고교시절 '테러리스트'를 보고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너무 멋있다''나도 저런 영화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죠.그런데 액션영화를 하기까지는 데뷔하고도 14년이 지났네요. 제게 배우의 꿈을 심어준 '테러리스트'의 최민수 선배 같은 억센 남성미는 없지만 가슴 깊은 상처를 지닌 남자의 감성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

그는 아이를 잃어버린 태식의 감정 연기도 중요한 한 축이라고 설명했다. 태식은 말수를 줄인 채 눈빛으로 아이와 교감한다. 짧은 대사로 많은 감정을 보여주려 하니 '마더'에서 했던 '모자란' 청년 역보다 어려웠다고 한다.

"촬영장에서 '아저씨'란 호칭은 새론(소미 역)이가 처음이었어요. 여태까지 '오빠'란 말이 익숙했었는 데 말이죠.하하."

그동안 멜로물을 피한 이유에 대해서는 "'가을동화'류의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라며 "30대 후반쯤 되면 다른 감성의 멜로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연간 20편 이상 출연 제의를 받지만 상대적으로 출연작이 적은 것은 궁합이 맞는 작품이 적었기 때문이라고."많은 작품보다는 천천히 다양한 색깔을 인상깊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먼 훗날 누군가 저를 닮고 싶은 배우가 되기를 바라면서요. "

촬영작업이 없을 때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했다.

"대부분 집에 있어요. 영화 보고 책도 봐요. 사람들을 자주 만나거나 술자리를 자주 하지는 않아요. 밤낮이 뒤바뀔 때가 있는데 아침까지 안 자고 혼자 조조영화를 보고 나서 자기도 합니다. '방자전' 이후에는 바빠서 극장에 못 갔어요.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