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심상치 않다. 생산자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돈이 도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1~2개월 뒤면 '공장도 가격'이 '소비자 가격'에 반영돼 하반기에 물가가 들썩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세계의 공장' 중국에 임금 인상 바람이 거세지면서 '차이나플레이션'(중국발 인플레이션)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생산자물가 '껑충'

한국은행은 지난달 생산자물가가 1년 전보다 4.6% 올랐다고 8일 발표했다. 이 같은 상승률은 작년 1월(4.7%) 이후 16개월 만에 최고치다.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월 2.4%에 불과했으나 3월 2.6%,4월 3.2%로 상승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전월 대비로도 지난달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0.5%를 기록,7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생산자물가 급등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금융위기 여파로 맥을 못 추던 철강재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올 들어 세계 경기 회복 기대로 큰 폭으로 뛰었다. 국내 원유 수입물량의 80%가량을 차지하는 두바이유의 지난달 평균 가격이 1년 전보다 33%가량 뛴 것이 단적인 예다.

최근 들어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로 반전했으나 환율이 급등해 수입물가는 고공행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산품 생산가격 상승 압력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생산자물가 불안은 소비자물가에 순차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통상 1~2개월 뒤에 생산자물가가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다"며 "하반기에는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였던 소비자물가는 6~7월 3% 근처까지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지방선거 이후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 각종 서비스 요금이 인상될 경우 체감물가 상승률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돈 도는 속도 빨라져

시중에 풀린 돈이 빠르게 돌고 있는 점도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올해 1분기 통화유통속도는 0.713으로 2008년 3분기(0.748) 이후 가장 높았다. 통화유통속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광의통화(?H)로 나눈 값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시중에 돈이 빠르게 돈다는 뜻이다.

통화유통속도는 2000년대 들어 0.7~0.8을 유지해오다 금융위기 여파로 지난해 0.696까지 떨어졌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들어 통화유통속도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며 "생산 현장이나 시중에서 그만큼 자금회전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와 관련,한 보고서에서 "통화유통속도가 다시 상승하면서 통화량 증가가 물가 상승률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발 물가 불안 우려 가중

중국에서 '저임금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도 국내 물가에는 악재다. 아이폰 등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 폭스콘은 최근 9일 사이에 기본급을 122%나 올렸다. 지난달 29일 900위안이던 월급을 1100위안으로 인상한 데 이어 지난 2일 1200위안,지난 6일 2000위안으로 높였다. 올 들어 11명의 근로자가 열악한 노동조건 등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임금인상 압박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파업 사태를 겪고 있는 일본 혼다의 중국 현지공장도 지난 4일 기본급 및 잔업수당을 34% 인상하기로 했다.

임금인상 도미노는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전국 31개 성시(省市) 중 11곳이 지난 2~5월 중 최저임금을 평균 19.6% 올렸다. 중국 정부도 소득 재분배와 도농(都農)격차 해소를 위해 임금 인상을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값싼 물건을 생산해 전 세계 물가안정에 기여했던 중국이 앞으로는 인플레이션 수출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