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는 요즘 1인 기업으로 통한다. 중앙정부와 기업들이 발주하는 연구프로젝트 수주 액수가 웬만한 작은 기업의 연매출에 버금갈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20억~30억원은 보통이고 100억원대를 넘나드는 교수도 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5개 대학의 수주 1위 교수가 주인공들이다.

◆연구비는 외부에서 온다

대학이 좋은 연구결과를 내기 위해선 총알(연구비)이 많아야 한다. 기자재 등 투자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008년 전국 대학 연구비 3조5375억원 중 학교 자체 예산으로 해결한 액수는 2218억원(6.3%)에 불과했다. 반면 기업과 중앙정부 ·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 금액은 3조3025억원(93.3%)에 달했다.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오지 않으면 연구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이공계 DNA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5개 대학의 지난해 '연구비 수주실적 우수 교수' 명단을 분석한 결과 상위 '톱5'의 1인당 연구과제 계약액은 최소 11억~최고 51억원을 기록했다. 움직이는 1인 기업이라 부를 만한 규모다.

이공계 교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기초과학 및 응용기술 개발과 관련한 연구 수주가 많은 덕분이다. 연세대의 경우 상위 5명 중 인문계열 교수는 1명뿐이었고,성균관대에선 이공계열과 인문사회계열 1위의 수주액 격차가 4.3배까지 벌어졌다.

연세대 1위인 김동익 영상의학과 교수는 정부 예산 250억원이 투입된 '선도형 연구중심병원 사업'으로 제약사와 협업하고 있다. 고려대 1위인 김상식 교수는 수주 성공률이 90%를 넘고 나노기술 특허 40여개를 등록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영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산학협력중심대학육성사업'에서 경기도 서남부 지자체와 협력을 주도하고 있다. 서울대 박영준 전기공학과 교수와 박영우 물리천문학과 교수는 10년 이상 손발을 맞춰온 '연구 복식조'로 연 20억~30억원 규모의 국가핵심연구센터(NCRC)를 함께 지휘하고 있다. 남원우 이화여대 화학 · 나노과학과 교수는 교과부 창의과제 사업을 수행하며 사이언스,네이처 등에 우수 논문을 실어 '닮고 싶은 과학기술인'에도 선정됐다.

◆세일즈 · 실용 DNA

이들은 기업과 정부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정책과 신기술 개발 동력을 제공한다. 이영관 교수는 "응용학문인 공학에서 기업과 연계한 연구활동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추세"라며 "논문을 통한 학문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최근에는 국가 산업 경쟁력에 기여하는 것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라고 말했다.

김동익 교수는 개인 연구에 비해 산 · 학 협력 연구의 효율이 더 높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개인 연구에만 몰입해선 명확한 성과 목표를 설정하고 연구를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진다"며 "의료기술의 수요자(의사)와 생산자(제약 · 의료업계)가 함께 작업하니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세일즈 마인드'도 각별하다. 김상식 교수는 "정부 정책,사회 흐름에 따라 벤처-나노기술-녹색성장 순으로 화두가 됐듯 트렌드를 잘 좇으면 새로 나올 과제도 예측할 수 있다"며 "1년 전부터 관련 논문을 국제저널에 5개 이상 싣고 특허 출원도 미리 준비해 경험을 쌓는다"고 말했다.

◆얼리버드 DNA

이들 '톱'교수는 연구 과제 외에도 강의와 보직까지 병행하느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수억원이 왔다갔다하는 대형 프로젝트에는 '학내 예선전'을 거칠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고려대 BK21사업단장과 학부장을 겸직 중인 김상식 교수는 "늘 잠이 부족해 몸이 망가지는 것을 느낄 정도"라며 "연구에만 전념하고픈 마음도 있지만 우리 대학의 산 · 학협력 경쟁력 강화에 일조한다는 데 위안을 삼는다"고 말했다

김동익 교수는 "정부는 많은 예산과 권한을 주는 만큼 바쁘게 일하라고 요구한다"며 자신이 '중소기업 사장'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신기술 개발에 앞장서는 건 우리같이 많은 환자를 끌어모으는 대형 병원(세브란스병원)의 사회적 책무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