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가 1698년 귀족들에게 수염을 몽땅 자르라고 명했다. 나라를 강대국으로 키우기 위해선 '후진국의 상징'인 수염부터 깎아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오랜 풍습이자 러시아정교가 중시하는 수염을 밀어버리라니 거센 반발이 일었다. 궁정 이발사를 동원해 반강제로 수염을 깎으려 해도 진도가 안나가자 표트르 1세는 세금이란 수단을 꺼내들었다. 계급에 따라 30~100루블씩의 세금을 매기고 나서야 효과가 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수염세다. 이 우스꽝스러운 세금은 예카테리나 여제 시대에 폐지됐지만 턱수염 기르는 풍습도 점차 사라졌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영국 왕이 된 윌리엄 3세는 반란을 진압하느라 많은 돈이 필요하자 호화주택에 세금을 부과하는 아이디어를 채택했다. 처음엔 벽난로가 있느냐 없느냐로 호화 여부를 따졌으나 나중엔 창문 수를 기준으로 과세했다. 호화주택엔 창문도 많다는 데 착안한 일종의 재산세였다. 사람들은 앞다퉈 창문을 없앴고 집을 지을 때 아예 창을 내지 않게 됐다. 뒤따라 창문세를 도입했던 다른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도 유럽의 오래된 집들엔 창문이 거의 없는 이유다.

세금은 타당하든 아니든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기에 생활양식까지 바꿔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저서를 낼 때마다 인세를 뜯긴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한탄했다.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 "

정부가 에어컨 냉장고 드럼세탁기 TV 등 4대 가전제품중 전력소모가 많은 모델에 대해 지난 1일부터 개별소비세를 매기기로 해 말들이 많았으나 부과대상이 예상보다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업체들이 발빠르게 전력 소모량을 낮춰 세금을 피했기 때문이란다. 걷은 세금을 양로원 고아원 등 사회복지시설의 낡은 가전제품 교환에 쓴다는 계획엔 차질이 생기겠지만 에너지 절감에는 도움이 될 터이니 나름대로 기여한 바가 있다고 해야 할까.

일부 학자는 어떤 종류의 세금을 부과했느냐로 봉건시대와 근대를 구분하기도 한다. 수염세 창문세는 사라졌으나 요즘도 유럽 중국 등에선 비만세 호흡세 같은 희한한 세금이 도입됐거나 검토되고 있다. '가혹한 정치(무리한 세금 징수)는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논어)고 했다. 틈만 있으면 국민 주머니를 비집고 들어오는 게 세금의 속성이라지만 불합리한 세금은 민심을 떠나게 만든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