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을 전율케 한 이른바 '조두순사건'의 여파로 법개정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5일 "아동 성범죄자는 재범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상정보 공개 정도를 높여 사회에서 최대한 격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며 "피해 아동에 대한 법적 보호와 의료지원 등은 여성부가 주관하고 총리실 법무부 지방자치단체 지역병원이 동참해 종합적인 예방과 단속 체제를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한나라당은 형법상 유기징역 상한 15년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고,법무부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13세 미만 아동 강간죄의 법정하한(징역 7년)을 높이도록 공식 건의했다.

징역형을 살고 나와도 끊임없이 재범을 저지르는 성폭행범의 실태는 심각하다. 재범인 조모씨는 징역 12년을 확정받았지만 평생 불구가 된 피해자에 대한 죗값으로는 너무 가볍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견해다. 물론 분노가 섞인 감정적 단죄와 법적 단죄는 다르지만,아동성범죄를 엄단하는 세계적 추세로 볼 때 허술한 법제 정비는 시급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견해다.

◆처벌기준 재정립해야


아동성범죄는 치명적 상해와 정신적 후유증을 낳을 수 있는 중범죄임에도 아직 적용법령이 통일되지 않은 상태다.

아동성범죄범들이 단골수법으로 들고 나오는 '심신미약'에 대한 판단 기준도 법정마다 제각각이다. 검찰이 항소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범인 조씨가 12년형을 받게 된 이유는 법정하한이 낮은 것 외에도 이런 문제들이 작용했다. 검찰은 조두순사건에서 형법상 강간치상(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러나 성폭력범죄처벌법상 13세 미만 아동강간죄는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다. 별로 차이가 안 나는 것 같지만 이 두 조항은 다른 범죄사실과 경합되면 가능한 선고량이 달라진다. 서울중앙지법 A판사는 "유례를 본 적 없이 심각한 사건인데 왜 일반 형법으로 기소했는지 의문"이라며 "검찰이 입증하지 못했지만 흉기를 사용했다면 죄가 더 무거워졌을 수 있다"고 밝혔다. 조씨를 기소했던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무기징역을 구형했고,어차피 둘 다 최고형이 무기징역이라 차이가 없다고 봤다. 할 것은 했다"고 해명했다.

◆'심신미약'은 단골 감경사유?…검찰 항소는 왜 안 했나



서울고법은 2006년 상습적인 아동성폭행범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5년으로 감형했다. 고법이 "어릴 적부터 가해자가 성적 학대를 당해 정신분열증,소아기호증 등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라는 항소 이유를 받아들인 것이다.

조두순 사건에서도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조씨에 대해 범행 당시 만취상태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을 했다. 그러나 조씨가 실제 만취상태였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조씨는 오히려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하면서 "피해자를 도와주려 했는데 범인으로 몰릴까봐 자리를 피했다"는 진술을 했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은 것도 1심의 12년형이 그대로 확정된 이유다. 형사소송법상 상급심이 하급심의 판결 형량보다 높이려면 '항소이유'와 함께 파기자판(하급심의 판단을 깨고 독자적 판단을 내리는 것)을 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이 항소하지 않고 조씨만 '형을 깎아달라'는 항소를 했으니 형을 높일 수 있었던 '항소 이유',즉 법적 근거가 없었다.

검찰은 항소를 안 한 이유에 대해 "선고량이 구형량의 2분의 1 밑으로 내려갈 때 공소심의위원회를 여는데 이 경우 무기징역의 반인 7년보다 높은 12년형을 받아 항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범죄자의 인권보다 중요한 것은 2 · 3차 잠재적 피해자들



경찰에 따르면 매년 아동 대상 성범죄 입건 수는 2005년 738건,2006년 980건,2007년 1081건,작년 1220건으로 지속적인 증가추세다. 아동 대상 성범죄와 관련된 집행유예율도 법 도입 후 소폭 낮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40%대 이상이다. 10명 중 4명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화간 · 음모 등 여러 변수가 있어 유 · 무죄를 가리기 어려운 성인 간 성범죄와는 달리 아동성범죄는 피해자에게 그런 여지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엄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일반적 법리이며 외국은 이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다.

외국은 아동성폭행범을 가혹하게 처벌할 뿐 아니라 2 · 3차 피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성폭행 과정에서 감금 · 폭행 · 약취유인 등 여러 법령을 함께 적용해 종신형에 가까운 선고를 내린다. 지난 7월 텍사스주는 10대 소녀 3명을 20개월간 성폭행한 43세 남자에게 '4060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얼굴을 공개했다. 또 '메건법'에 따라 모든 주에서 가해자 인적사항을 공개하며,두 번 이상 아동성범죄로 입건돼 유죄판결을 받으면 영구 격리시키는'투스트라이크 아웃'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중국과 이란의 법정 최고형은 사형이며 실제로 집행되고 있다. 독일과 체코는 '물리적 거세'까지 한다. 유럽 일부 국가와 미국 일부 주,캐나다 등에서는 약물로 성욕을 없애는 '화학적 거세요법'을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이 작년 9월 상습아동성폭력범에 대한 화학적 거세법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박 의원은 "법정형을 높이고 선고 관행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시급한 것은 법적으로 2 · 3차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거의 방치된 가해자들을 막기 위한 제도 정비"라고 지적했다.

이해성/서보미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