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충남도지사 속에는 '작은 나라'가 들어 있다. 경제기획원 관료,지방경찰청장,외교관,교수,국회의원,도지사.한 나라의 공직이 거의 다 있다시피한 흔치 않은 이력이다. 그가 움직이면 행정부가 움직이는 것과 같다는 비유가 그럴 듯하다. 이 지사와는 논쟁을 피하는 게 좋다. 폭넓은 경험에서 나오는 논리와 두둑한 입담,정력적인 표정에 압도당한다. 3년간 40만㎞를 날아다니며 50억달러의 해외 투자를 끌어모은 장사 수완은 그의 진짜 핵무기다. 대전행 KTX 열차시간을 늦춰가며 진행된 그와의 솔직 토크.막차시간이 다 돼서야 겨우 마무리됐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왜 그렇게 싫어 하세요. 행정수도,수도권 규제 완화 문제만 나오면 부딪치더군요.

"남들에겐 앙숙으로 보이겠지만 개인적으론 사이가 좋아요. 언론에서 싸움을 붙이는 것 아닌가요. 제가 신한국당 시절 대표 비서실장을 할 때 김 지사는 특보를 했어요. 잘 아는 사이죠.그러나 김 지사와 저는 국정을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김 지사는 잘 터뜨리는 성격이고,저는 말을 아끼는 스타일입니다. "

▼충남지사가 아닌 경기지사라면.

"제가 경기지사라도 무조건 수도권의 입장만 옹호하지 않겠다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공장부지를 예로 들어 봅시다. 당진과 평택이 좋은 비교 대상이 되겠네요. 충남 당진에서 입지 여건이 가장 좋은 땅이 3.3㎡(1평)당 60만~70만원 선이에요. 경기 평택은 300만원 이상입니다. 당진과 평택은 거의 붙어 있지만 땅값은 이렇게 많은 차이가 납니다. 평택은 죽었다 깨어나도 당진과의 경쟁에서 못 이깁니다. 인천과 비교해 볼까요. 인천 남동구에서 제일 싼 땅이 500만원입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충남은 10만원짜리 땅이 널려 있습니다. 어디에 공장을 짓게 하는 게 옳을까요. 축구도 운동장을 넓게 쓰는 팀이 이기지 않습니까. 문전에서만 왔다갔다 한다고 골이 들어가나요. 넓게 써야죠 땅을."

▼정부에 기업 규제 완화를 위한 방안도 많이 제시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내 나름대로 지역 사정을 잘 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사가 되고 보니 기업 규제가 심각한 줄 새삼 알게 됐어요. 공장 하나 짓는 데 무려 4년8개월이나 걸려요. 맨 처음 군청에서 검토한 뒤 도청으로 넘어가 환경부 등을 거쳐 다시 내려오는 게 기본기획입니다. 이걸 가지고 세부계획을 세우고 다시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야 합니다. 환경영향평가도 1년 이상 걸려요. 문화재지표 시 · 발굴 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2007년 충남도에서 문화재지표 시 · 발굴 조사한 실적이 301건인데 시간만 1~2년씩 잡아먹고 수백억원의 경비까지 날렸지만 가치가 있어 보존 결정을 내린 건 단 한건도 없었습니다. "

▼외자 유치에 올인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살 길은 외자 유치뿐이에요. 자원도 없고 땅덩어리도 작은 우리가 고도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선 끊임없이 외자를 불러들이는 길밖에 없어요. 중국을 보세요. 연간 외자 유치 실적이 600억~700억달러입니다. 우리는 10분의 1도 안 될 걸요. 충남의 경쟁력은 훌륭한 기업이 많다는 거지요. 삼성전자 현대차 기아차 현대제철 동부제강 같은 기업이 이곳에 있어요. 외국 투자자들이 충남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투자 유치 협상을 할 때 삼성전자와 현대차 현대제철이 충남에 있다고 하면 분위기가 달라져요. 기업 하기 좋은 곳이다,이렇게 생각하는 거지요. 협상 때 한마디 더 슬쩍 던집니다. '삼성 소개해 줄게''현대제철 CEO 만나게 해 줄게'.그러면 일이 술술 풀립니다. 충남브랜드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

▼세종시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데.

"중앙정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빨리 매듭을 지어줘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거 안 되면 지사직 던진다고 이미 선언해 놓았습니다. 행복도시는 국민적 합의를 거쳐 국회에서 법안으로 통과됐고 부지만 자그마치 2200만평입니다. 지금까지 집행된 돈만 무려 5조6000억원이고 연말까지 10조원에 가까운 돈이 집행됩니다.

▼10조원이 아니라 50조원이 든다,유령도시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어요.

"행복도시와 관련해 무책임한 말을 내던지는 사람이 많은데 비판만 하지 말고 책임질 수 있는 대안을 내놓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루빨리 합리적인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

▼도정에서 현장감각을 매우 중시하는데 일화 한토막 소개해 주시죠.

"1996년 국회 농림수산위원회에서 활동할 때입니다. 농림부 농림축산국장과 과장을 불러세웠어요. 소나 돼지를 길러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봤죠.'없다'고 대답하길래 '키워 보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축산정책을 세우느냐'며 호되게 질책했어요. 중앙공무원들은 현장감각이 너무 무뎌요. 현장을 보지 않아서 겉도는 정책도 수두룩해요. 외자 유치도 중앙공무원들이 현장에 와서 직접 눈으로 봐야 합니다. 중앙과 지방정부 간의 긴밀한 유대관계도 절실합니다. 중앙의 정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피드백되는지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

▼충남도 행정에서 직원인사를 어떤 원칙으로 합니까.

"전적으로 실무 국 · 실장에게 맡깁니다. 직원들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겠습니까. 능력 없는 사람을 승진시키면 금방 드러나요. 제 앞에서 거짓말을 못하지요. 제가 경찰청장 출신 아니겠습니까. 척 보면 아는 거지요. "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회의도 하셨지요.

"현 정부는 실물경제에 탁월한 감각이 있어요. 특히 상반기에 재정을 조기 집행한 게 경제위기 극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이런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죠.펌프질을 하려면 먼저 바가지로 물을 부어줘야 하거든요. 조기 집행이야말로 실물경제 경험이 풍부한 대통령의 감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요. 그걸 국민이 너무 간과하고 있고 낮게 평가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으시죠.

"충남이 원어민 교사 제도를 최초로 시행한 거 모르죠? 작년 3월 이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때 171개 충남도 읍면에 3년간 171명의 원어민 교사를 배치했다고 말씀드렸어요. 대통령 취임 직전 인수위가 4조원을 들여 2만3000명의 교사를 해외에 연수 보내 공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였죠.제가 말씀을 드렸어요. 80억원의 예산이면 충분하다고 했죠.전국에 초등학교가 5900여개니까 3000억원이면 된다고 했죠.4조원이 말이 되느냐고 했더니 대통령께서 즉각 지시를 내렸어요. 그래서 작년 9월부터 전국적으로 원어민 교사가 배치되기 시작했어요. "

▼중앙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중앙공무원들이 지방과 현장을 꼼꼼하게 돌아다니면서 현황을 파악한 뒤 정책을 세웠으면 합니다. "


▼잘나가던 경제관료에서 경찰로 변신한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행정고시(15회)에 최종 47명이 붙었는데 성적이 괜찮게 나왔어요. 첫 발령지가 경제기획원이었어요. 권오규 전 부총리,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서동원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당시 함께 근무한 동기들입니다. 통계국 기획국 예산국 등에서 근무하면서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어느 날 문득 좀 더 액티브한 일이 나한테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 사시나 행시 합격자 중 1년에 한 명이 될까말까 경찰 경정으로 특채를 했어요. 그때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죠."

▼정치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뭔가요.

"서른한 살에 고향인 홍성에서 최연소로 경찰서장을 지냈고,서른아홉 살에 경찰의 별이라는 경무관을 달았어요. 잘나갔죠.충남경찰청장을 끝으로 옷을 벗고 1996년 신한국당으로 출마해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사람 보는 데 귀신'이라는 YS(김영삼 전 대통령)한테 찍힌 게 정치 입문의 배경이라면 배경입니다. 이재오 박성범 같은 분들이 함께 YS의 부름을 받았죠."

▼17대 때는 의원 출마를 포기했는데.

"16대 때 69%가 넘는 득표율로 전국 최다득표를 했고,자민련에 몸담고 있을 때 대변인과 원내총무를 지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죠.정치에 회의를 느낄 즈음 대학교수가 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17대 공천이 결정되기 전인 2004년 2월 J1비자를 받아 3월6일 미국 UCLA에 교환교수로 갔습니다. "

▼교수에서 도지사로 또다시 신분을 바꾼 계기라도 있습니까.

"교환교수를 하면서 편안하게 지내다 보니 젊은 나이에 이렇게 시간을 헐렁하게 보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한 충청지역 언론사에서 차기 지사 여론조사를 했는데 제가 2등으로 나왔더군요. 기억해 주시는 게 고마워서 2005년 11월 귀국해 충남 주요 도시를 한 바퀴 주욱 돌아보았어요. 분위기가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2006년 1월13일 기자회견을 갖고 출마선언을 했죠."

▼어린시절로 돌아가 볼까요.

"개구쟁이도,말썽꾸러기도 아닌 모범생이었습니다. 어렸지만 남에게 지기 싫어했던 것은 확실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덩치 큰 중학생이랑 한판 붙은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얻어터졌죠.화가 너무 나서 돌멩이를 들고 3일간 대문 앞을 지켰지요. 그 형이 부모님과 함께 나와서 잘못했다고 하더군요. 그제서야 집으로 돌아간 기억이 생생합니다. 구슬치기와 딱지치기에서 져본 적이 거의 없어요. 잃으면 다시 딸 때까지 끝까지 했습니다. 양정고 시절에는 학생회장을 지냈습니다. 한 · 일회담 반대 데모때 명동파출소에 끌려가 죽도록 맞은 기억도 있습니다. 인연이 무서운 게,경찰에 투신한 후 바로 이 명동파출소에서 수습교육을 받았습니다. "

▼그런 성격은 집안 내력인가요.

"사실은 외강내유형입니다. 아내와 아들이랑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골목길에서 20분 넘게 나오지 못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울 때도 많아요. 11대조 할아버지가 임진왜란 때 홍주에서 의병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긴 합니다만….강한 승부욕은 조상이 물려준 정신적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쪽으로 발전시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별명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탱크처럼 힘차게 밀어붙인다고 해서 최경주 선수와 같은 '탱크'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지역구 주민들이 '똑소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하는 일마다 똑소리나게 해결해 준다고 해서….'사막에 내놓아도 물동이를 지고 올 사람'이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

▼평생 탄탄대로에 출세가도만 달린 것 같습니다.

"경기고를 두 번,서울대를 두 번 떨어졌습니다. 쓴 맛을 보기 전까지는 내가 최고라고 자부하며 살아왔습니다. 얼마나 건방을 떨었냐 하면 당시 사법시험에 응시하려면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수료하거나 사법행정예비시험에 합격해야 했습니다. 대입 재수하면서 사법행정예비시험을 쳐서 합격해 버렸어요. 대학 입학 후 사시를 일찍 볼 생각이었던 거죠.그러나 연거푸 대입에 실패한 이후 결코 자만하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지요. "

▼스파르타식으로 자녀를 키울 것 같은데.

"가능하면 자율을 강조하고 독립심을 키워주려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용돈을 남들처럼 정기적으로 주지 않고 바구니에 담아 놓고 알아서 가져다 쓰라고 했습니다. 대신 옆에 수첩을 펴놓고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만 기록해 놓으라고 했지요. "

▼대권 도전은.

"기본적으로 쉼과 기다림의 정치를 터득한 사람입니다. 대권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근처에 가지도 않았고,손꼽아 기다리지도 않는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도지사직에 최선을 다할 따름입니다. 열정과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뒤 때가 되면 기회가 올 것이고.때가 안 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순(耳順)이 되니 이치와 순리의 미학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

정리=백창현/사진=김영우 기자 chbaik@hankyung.com


이완구 충남지사는

출생:1950년 충남 홍성

학교:대전중, 양정고, 성균관대

경력:행시 15회, 경제기획원

충남 · 북 지방경찰청장, LA영사

15,16대 국회의원

신한국당 대표 비서실장

자민련 원내총무

좌우명:역지사지(易地思之)

애창곡:내마음 갈 곳을 잃어

종교:천주교

주량:소주 1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