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기는 여전히 바닥인데도 집값이 튀어오르는 주택시장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불길해 보이기까지 한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그동안 규제풀기에 바빴던 정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축소 등 급히 돈줄을 묶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이번 여름 비수기가 지나가면 집값의 대세상승이 재연될 것이라는 괴담마저 떠도는 실정이고 보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서울 강남 재건축아파트만의 얘기도 아니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학습효과 그대로다. 일단 불이 붙은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값은 벌써 주변 일반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렸고,이어 목동 분당 등 '버블 세븐'이 들썩이면서 다른 지역으로 상승세가 번질 기세다. 정부가 뒤늦게 법석을 떨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만 불길을 잡는 데 실패하는 것도 뚜렷하게 각인된 경험칙(經驗則)이다.

이런 사태는 예고된 측면이 크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의 무차별 규제로 2007년부터 집값이 하향세로 돌아서고 미분양 주택이 15만세대를 넘으면서 건설사 도산이 잇따르자 결국 정부는 집값을 누르고 있던 규제들을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지난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는 규제완화를 넘어 적극적인 부양책을 쏟아내는 계기였다. 투기지역 해제,분양주택 양도세 감면,재건축 용적률 상향 등의 조치가 이어졌다.

이를 많은 사람들은 집값 부추기기의 전주곡으로 받아들였다. 주택담보대출금리도 사상 최저 수준이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은 넘쳐나고,불황 여파로 신규 주택공급은 줄었다. 집값이 오를 만반의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2001년부터의 집값 폭등을 불러온 외환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국민의 정부'는 최악의 주택경기를 띄우기 위해 1998년 분양가 자율화를 시작으로 분양권 전매 허용,소형 의무건설비율 축소,재당첨 제한 폐지,취득세 · 양도세 감면 등 거의 모든 규제를 풀었다. 그 이후 벌어진 사태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미친 듯이 오르는 집값을 잡기 위해 지난 참여정부가 쏟아낸 규제는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정권 임기 5년 내내 부동산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기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부도 같은 메뉴의 규제를 쳇바퀴식으로 풀고 조이는,돌고 도는 부동산 정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시장의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규제완화를 추진해 왔지만,국민들의 소득수준이 받쳐주지 못할 만큼 지나치게 높은 집값은 분명 비정상이다.

결국 강남을 곧바로 겨냥한 대책이 지금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강남에 무슨 원죄(原罪)가 있어서가 아니라 강남이 부동산 문제의 근원이자 전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집값이 가장 먼저 뛰고 맨 나중에 내리는 강남부터 선제적으로 진화(鎭火)하기 위한 맞춤식의 미시적 대응이 가장 필요한 이때,정부는 오히려 총론적 뒷북 대책에 매달려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되는 문제로 키우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주택 또한 공급과 수요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지만,결코 시장에만 맡겨질 수는 없는 일이다. 주택은 국민들의 주거와 삶의 질에 관한 복지의 문제이고,집값을 잡는 것이야말로 서민생활 안정을 통한 사회통합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정책수단으로서 필수규제의 당위성을 갖는 이유다.

단언컨대 이 정권의 성패 또한 집값을 잡느냐 잡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또다시 집값 폭등이 되풀이되고 강남과 비강남,서울 · 수도권과 지방의 집값 양극화가 더욱 심화된다면,정권 당대의 재앙임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도 두고두고 우리 경제가 부동산의 덫에 갇힌 채 지속성장을 기약할 수 없는 신세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집값 오르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집값을 꺾기 위한 강력한 정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벌써 늦었는지 모른다.

추창근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