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분야 정부 예산 규모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 4개 부처로 업무가 분산돼 있는 데다 기능별로 예산을 짜다보니 IT 예산이라고 딱 자르기도 어렵다. " 지식경제부 예산 담당 공무원의 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옛 정보통신부가 맡던 IT 정책이 지경부,방송통신위원회,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로 분산되면서 빚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러니 'IT정책이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하다.

이런 와중에 터져나온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발언이 IT정책 공방으로 비화되고 있다. 곽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한 심포지엄에서 "IT가 죽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무한 경쟁시대임에도 보조금을 받고,사업독점권을 부여받아 편하게 지냈던 그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IT업계는 곽 위원장의 발언 의미를 따지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추경에서 IT 분야 예산 비중이 1%에 불과할 정도로 홀대 받고 있고 체계적인 IT정책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한 가운데 곽 위원장이 강경 발언을 내놨기 때문이다.

IT정책을 관장하는 지경부나 방통위도 IT정책 실종이라는 세간의 비판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지경부 고위 관계자는 "전통산업에 IT를 접목해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뉴IT전략'을 추진하고 있는데 IT정책 비전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업계는 정부의 IT정책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방통위의 방송 정책이 끊임없이 정치적 논쟁에 휩싸이는 바람에 통신 등 IT정책은 뒷전이었는 데다 일자리 창출을 정책의 목표로 삼는 바람에 IT정책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IT정책에 대한 비전도 제대로 내놓지 못한 정부가 IT업계의 요구를 마치 과거 정부에 대한 향수로 치부하려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IT벤처기업들의 낙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지경부가 내놓은 뉴IT정책은 조선 자동차 등 기존 대기업들의 IT 지원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며 "산업의 기반인 벤처 육성을 등한시할 경우 그나마 해외에서 앞서 있는 IT기반산업마저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하소연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고 '기득권자들의 저항'으로 치부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