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형보다 DC형이 유리…퇴직연금 전환 먼저"

임금이 동결이나 삭감되는 경제 불황기에 맞게 퇴직연금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30대 그룹에서 추진키로 했듯이 향후 2~3년간 임금이 동결이나 삭감될 경우 당장의 소득이 감소하는데 그치지 않고, 퇴직시 지급받는 퇴직급여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DB형보다 DC형이 유리
퇴직연금에는 기업이 적립금을 운용해 퇴직시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확정급여(DB)형과 기업이 매년 한달치 급여만큼 지급하는 적립금을 종업원이 자기 책임아래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 등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선택이 가능하고 중도 전환도 할 수 있다.

1월 말 기준 6조7천억원 규모로 113만명이 가입한 퇴직연금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DB형이나, 3분의 1을 차지하는 DC형은 각각의 특성 때문에 유불리를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임금이 정상적으로 오르지 않고 이번처럼 수년간 동결되거나 삭감되는 상황에서는, 안정적이긴 하지만 기존 퇴직금 제도처럼 '퇴직시 월평균 임금×근속연수'로 수령액이 확정되는 DB형보다는, 원리금이 보장되는 정기예금부터 실적배당형 펀드까지 다양한 상품에 투자해 얻은 수익을 퇴직급여로 받는 DC형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성투신운용의 김성준 연금컨설팅팀장은 8일 "DB형과 DC형은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경기불황으로 장기간 임금동결이나 삭감이 지속된다면 매년 누적되는 임금상승률에 따라 수령액이 결정되는 DB형보다 회사로부터 미리 받은 분담금을 운용해 수익을 쌓아가는 DC형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 3년간 수령액 9% 차이
연봉 3천600만원인 회사원 A씨가 임금이 동결된 채 3년간 근무하다 퇴직했다고 가정하자. A씨가 DB형을 선택했을 경우 받는 퇴직 급여는 300만원(월평균 임금)×3(근속연수) = 900만원이다.

반면 A씨가 DC형을 선택해 매년 초 회사측이 내는 300만원의 적립금을 정기예금(연 이자 3.5%)과 채권형펀드(평균 수익률 1년 6.31%, 2년 11.68%, 3년 17.00%)에 반반씩 분산투자했다면, 3년 뒤 수령하는 퇴직 급여는 984만원으로 DB형보다 84만원(9.3%)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때 DC형의 운용 성과는 수년 만에 찾아온 금융위기가 반영된 최근까지의 정기예금 이자와 채권형펀드 평균 수익률을 적용한 것이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추정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채권형 퇴직연금펀드인 '삼성 퇴직연금인덱스 12채권자1'은 3년 수익률이 18.16%, '하나UBS LP퇴직연금장기국공채권자'는 19.23%, '한국퇴직연금국공채증권자 1'은 18.31%로 전체 채권형펀드의 평균을 웃돈다.

하지만 DC형은 운용 결과에 따라선 퇴직급여 수령액이 감소할 위험도 있기 때문에, 선택 가능한 상품들의 특성을 잘 파악한 뒤 본인의 재무 상태와 은퇴 계획에 맞게 투자전략을 세워야 한다.

통상 DB형에서 DC형으로의 전환은 한 차례밖에 허용되지 않고, DC형으로 전환한 후에는 DB형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 퇴직연금 도입이 먼저
만약 도입 4년째로 접어든 퇴직연금으로 전환하지 않고 기존 퇴직금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의 직원이, 경제 불황기 퇴직급여를 안전하게 보장받기 위해선 퇴직연금 도입부터 선행돼야 한다.

기존 퇴직금 제도는 DB형 퇴직연금과 수령액 계산 방식은 거의 같지만, 기업의 적립금 관리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기존 퇴직금 제도는 퇴직 적립금 관리가 사실상 기업에 일임돼 적립금을 외부에 예치하지 않고 사내 유보금 형태로 관리하는 곳이 많은데, 불황으로 부도가 나거나 자금난이 심해지면 퇴직급여를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반면 DB형은 적립금의 60% 이상을 의무적으로 사외 운용기관에 예치해야 하고, DC형은 100% 사외에 예치하기 때문에 퇴직급여 지급을 보장받을 수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기업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어 쉽지 않겠지만 퇴직급여 보장을 위해선 퇴직연금 도입이 중요하다"며 "임금 삭감이나 자금난 악화가 예상될 경우 퇴직금을 중간 정산받아 정기예금 등에 넣어두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abullapi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