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15c '흑사병'서 佛최고랍부 탄생, 위기때 살아 남아야 진정한 강자

1432년 어느날,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나르본은 시체로 넘쳐났다. 인구의 3분의 1이 흑사병으로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시체 치우기 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폐허,이것이 새 항로 개척을 위해 시리아에 갔다가 돌아온 자크 쾨르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절망과 비탄과 무력감에 빠져 있었지만,그는 이곳에서 기회를 보았다. 새로운 무역기지를 찾던 그에게 황폐해진 나르본은 저렴한 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뿐 아니다. 평소 같으면 벼슬아치들과 경쟁자들의 방해로 엄두를 못 냈을 무역업 진출이 이 혼란으로 인해서 가능해진다. 이곳을 기반으로 그는 베네치아 상인들을 거치지 않고 고려나 중국 도자기의 직거래 루트를 개척하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단순한 개인적 성취를 넘어 영국과의 100년 전쟁과 흑사병으로 황폐해진 프랑스 경제를 재건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 사업가의 이름은 자크 쾨르.500년도 더 전의 사람이지만 전문가들은 그의 재산이 프랑스 역사상 가장 많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BNP파리바,푸조,로레알,까르푸,르노 등의 블루칩으로만 구성된 파리 증시의 CAC40 지수 기업(40개 기업)의 전체 가치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이었단다. 그가 무일푼에서 최고의 부자가 된 결정적 계기는 흑사병이라는 희대의 경제위기였다. (조승연 저,<<비지니스의 탄생>> 중에서)

경제위기는 우리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매출도 줄고 일자리도 줄어든다. 물론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실제보다 지나치게 암울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 두뇌의 가장 바깥에는 논리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사고하는 신피질이 있고 가장 깊숙한 곳에는 파충류의 두뇌가 있다. 본능적 행동은 그 파충류의 두뇌가 만들어낸다. 그런데 우리가 급박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이 파충류의 두뇌가 신피질을 꼼작 못하게 잡아 가둔다. 즉 합리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 앞에서 본능적으로 움츠린다.

요즈음 경제경영서의 판매는 줄어든 반면 문학 서적의 판매량은 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위기 속에서 움츠리고,과거지향적이 되는 우리의 본능을 반영하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성공하는 자는 본능을 극복한다. 위기 앞에서 눈을 바로 뜨고 미래를 구상하는 자가 성공한다. 성공의 기회가 변화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의 금융위기는 엄청난 변화와 기회를 몰고 올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변화의 파도에 떠내려가겠지만 어떤 사람은 그 파도를 타고 평소 같으면 갈 수 없었던 먼 곳까지 갈 것이다.

우리 기업의 부침도 그랬다. 당시 경제의 규모를 생각할 때 1970년대에 겪었던 오일 쇼크는 지금의 위기 못지않게 크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건설기업들은 중동의 건설 시장을 개척해서 돈을 벌 수 있었고,현대건설이 세계적 기업으로 뛰어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때였다. SK가 에너지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계기도 바로 오일쇼크였다.

성공한 기업들은 대부분 그랬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강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외환위기가 가져다 준 위기 의식 때문이었다. 이마트가 업계 최강 자리를 굳힌 것은 외환위기 때 싼 값에 좋은 부지들을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워런 버핏은 말한다. 현명한 사람은 변화 속에서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내지만,보통 사람은 그걸 버리고 오히려 고평가된 주식을 손에 넣는다고.주식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이 격랑 속에서 미래를 보고 있는가,아니면 어떻게든 고통을 피해보려고 반쯤은 엉덩이를 빼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는가. 그 답은 5년 후면 판가름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