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등 금융권의 저당액이 많은 아파트에 입주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처럼 집값이 떨어진다면 전세 보증금을 떼일 수도 있는 탓에 위험부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죠."(서울 송파구 잠실동 A 부동산공인중개사)

주택경기 침체 여파로 서울 강남권 등을 중심으로 고점대비 집값이 수억원씩 하락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조금이라도 많다 싶으면 전세를 얻기 꺼려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집값 상승기에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고가 드물지만 지금같은 하락기에는 살던 집에 경매됐을 때 전세금을 손해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전세를 놓기 전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면 세입자의 전세금은 전세등기를 설정하거나 확정일자를 받더라도 후순위로 밀린다. 대출금을 갚고 남은 돈으로 전세금을 돌려준다는 얘기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B공인 관계자는 24일 "매매가가 7억2000만원인 동아아파트 105㎡형의 경우 대출액이 3억원으로 절반에 육박하면서 전세 수요자들이 계약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사정이 이렇다보니 집주인이 대출금을 2억원으로 줄일테니 세입자를 꼭 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2006년 하반기만해도 아파트값이 9억원을 호가한 덕에 전세보증금을 떼일 염려가 적었으나 더 이상은 아니다. 전셋값 2억5000만원을 더하면 현재 매매가의 76%에 이른다. 만약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서 5억5000만원 이하로 팔렸다면 세입자 피해가 불가피하다.

법원경매정보업체인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의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된 금액의 비율)은 매월 하락세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90%를 넘었지만 7월부터는 80%대에 접어들었다. 지난달부터는 76.9%를 기록했고 이달 15일 현재 낙찰가율은 75%다. 아파트에 따라서는 낙찰가율이 60%대에 이르기도 한다.

송파구 잠실동 C공인 관계자는 "집값 대비 융자금이 40~50%에 이르는 집들은 전세를 내놓아도 찾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전셋값이 연일 떨어지면서 세입자의 입지가 커졌다. 굳이 주택담보대출이 많은 집에 세를 들지 않아도 될 만큼 매물이 넉넉해졌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지역 전셋값은 4주째 0.24% 정도씩 하락했다. 집주인 가운데 재계약을 할 때 전세금을 일부 돌려줘야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럴 경우 세입자들은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 전세금을 일부 챙기는 대신 주택담보대출금을 줄여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집값 추가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출이 많은 집은 경계해야 한다"며 "빚이 많은 아파트에 전세를 얻을 때는 보증금을 많이 깎아야 하고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매에 들어가는 순간 월세를 내지 않고 전세금에서 제외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종서 기자/이문용.양승석 인턴(한국외대 3학년)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