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 포승면에 위치한 이구산업 제3공장(포승공장).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5km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한 이 공장은 전체 외양이 '군함의 왕'인 항공모함을 빼닮았다. 손인국 이구산업 사장은 "우리나라에도 항공모함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이구산업의 주력품목인 동판과 황동판을 생산하는 포승공장은 외관뿐 아니라 규모에 있어서도 항공모함과 비슷하다. 건물 길이만 무려 500m에 달한다. 공장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왕복하면 꼬박 1㎞를 걷는 셈.

포승공장 직원 사이에는 "점심식사 후 공장 한 바퀴 돌고나면 소화 끝"이라는 농담이 나돌 정도다.

건물면적은 1만㎡,전체 부지면적은 10만㎡.

지난달 초 본격 가동을 시작한 포승공장은 이구산업의 제2 도약을 위한 성장동력이다.

이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최대 4만t. 기존 반월 제1공장과 시화 제2공장의 생산능력 2만t보다 두 배나 크다.

이들 3개 공장이 풀가동 체제를 완비할 경우 일본의 세계적 비철금속업체 미쓰비시머티리얼스(일본 매출 1위)와 연간 생산량에서 버금가는 수준이다. 손 사장은 "포승공장 가동으로 생산량의 증대와 함께 그동안 생산하지 못한 반도체나 전자부품용 등의 첨단 동판 신소재를 제조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400억원 매출 때 850억원 신공장 투자 결정

이구산업이 포승공장을 짓기 위해 들인 돈은 총 850억원에 달한다.

포승공장 착공에 나선 2002년 당시 이구산업의 매출은 약 400억원.회사 매출의 두 배가 넘는 돈을 신공장 건설에 쏟아붓는 '모험'에 가까운 투자를 한 셈이다.

손 사장이 처음 포승공장 건설계획을 밝혔을 때는 사내에서 반대 의견도 많았다.

이구(利久)산업이란 이름 그대로 1968년 창업 이후 당시까지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는 등 탄탄대로를 걸어왔는데 왜 굳이 위험을 감수하느냐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손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세계적으로 전기·전자와 자동차를 비롯 우주항공 분야에 이르기까지 동판 수요량이 지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의 노후하고 영세한 생산시설로는 이 '황금어장'을 그대로 경쟁업체들에 내주고 말 것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주력 생산기지인 반월공장은 1980년 준공돼 20년을 넘겼고 생산시설 증설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손 사장은 이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포승에 5년에 걸쳐 반월공장의 6배 규모인 신공장을 완공시켰다.

포승공장은 규모만 거대한 것이 아니다.

기존 공장에는 없던 각종 첨단장비를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단 압연기다.

쉽게 말해 동판을 무려 20번이나 눌러줘 최고 0.08㎜ 두께까지 얇게 만들어내는 장비다.

기존 반월공장에서는 4단 압연을 통해 0.3㎜ 수준밖에 만들지 못했다.

20단 압연기는 또 동판의 구부러진 정도를 자동으로 측정해 롤의 압력을 조정한다.

이에 따라 동판을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평평하게 만들어준다고 이구산업은 밝혔다.

◆첨단시설 앞세워 미국 일본 시장 개척

이구산업은 포승공장의 첨단 생산시설을 통해 리드프레임(반도체 칩에 전기를 공급하는 기판) 등 정보기술(IT) 분야 신소재 생산을 늘려갈 계획이다.

다른 동판 제품에 비해 IT 소재용 동판은 부가가치가 높고 시장 성장도 빠르기 때문이다.

리드프레임은 그러나 두께가 0.1㎜ 이하로 얇아 이구산업 기존 공장에서는 생산하지 못했다.

포승공장에서는 오는 6월까지 리드프레임 시제품을 내놓고 하반기부터 본격 생산할 예정이다.

커넥터용 동판은 지난달 시제품을 생산해 한국단자,한국몰렉스,우주일렉트로닉스 등 3개 회사에 공급했다.

커넥터는 전원과 기기,또는 기기와 기기 사이를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전자부품.휴대폰,액정표시장치(LCD),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등의 분야에서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구산업은 해외 수출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생산능력이 증가하고 첨단제품 생산을 할 수 있게 돼 기존 중국,동남아시장뿐만 아니라 선진국인 미국 일본 시장도 넘볼 여력이 생긴 까닭이다.

일본 시장의 경우 비철금속업체 쓰미토모에 황동판 중간재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또 미국에서는 건축자재와 가구,인테리어 분야 동판시장을 중점적으로 뚫는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지난해 전체 매출의 39% 수준이었던 해외 수출 비중을 45%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M&A 통해 부품사업 진출 추진

이구산업은 내수 및 해외 수출 증가로 지난해 1130억원이었던 회사 매출을 올해 1800억원으로 60%가량 늘린다는 목표다.

내년 목표는 2500억원,2010년은 4000억원으로 각각 설정했다.

연평균 50%에 가까운 고성장이다.

목표대로 성장이 뒷받침할 경우 5년 내 국내 동판 시장점유율이 20%에 이를 것으로 이구산업은 내다봤다.

국내 동판 시장은 풍산이 지난해 68%를 점유했으며 이구산업은 15%로 그 뒤를 이었다.

이구산업은 회사의 지속 성장을 위해 인수·합병(M&A)도 고려하고 있다.

국내 부품회사를 인수해 동판사업과의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방안이다.

손 사장은 "장기 계획의 하나로 내부 검토 중"이라며 "고속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M&A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손 사장은 그러나 한국 동판산업의 미래가 밝다고만 보지는 않는다.

후발주자 중국의 추격 때문이다.

지금은 중국 동판업체들이 내수에 역점을 두고 있지만 앞으로는 점차 한국을 비롯 외국 시장으로 몰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 이에 따라 이들과 국내에서 한판 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손 사장은 "중국이 한국 동판산업 기술력을 따라잡으려면 아직까지는 적어도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생산시설을 더욱 첨단화하고 연구개발을 강화해 중국의 추격에 대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택=글·임도원/사진·양윤모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