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세상에서 실제로 사업이 이뤄지게 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미국보다 한국에서 먼저 나왔다.

컨셉트 측면에서 세컨드라이프와 거의 똑같은 사이트가 등장해 실제로 서비스를 했다.

다다월드(www.dadaworlds.com)가 바로 그것이다.

이 사이트는 세컨드라이프보다 2년 빠른 2000년 사이버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지금은 흔적만 남았지만 한때는 '또 하나의 세상'이라며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다다월드를 만든 사람은 광운대 건축공학과 신유진 교수(49).신 교수는 미국에서 들여온 3차원 채팅 프로그램에 건축 기술을 추가해 사이버 월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다다월드 사이버 공간을 만들었다.

가상공간에 현실세계를 옮겨 실제로 생활과 상거래가 이뤄지게 하는 게 신 교수의 구상이었다.

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생각다른세상이란 회사를 세워 대표를 맡았다.

다다월드는 '정보기술(IT) 붐'에 힘입어 1년여 만에 회원(시민) 10만명을 달성했다.


2000년에는 400개 점포를 분양했는데 눈 깜짝할 새 다 나갔다.

분양가는 평당 10만원.10평짜리는 100만원,200평짜리는 200만원을 받았다.

삼성증권 외환카드 성도어패럴 등 대기업도 앞다퉈 사무실을 냈다.

한양대병원은 분원을 열어 진료를 시작했고,서울경찰청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사이버 파출소 설치를 추진했다.

다다월드를 통해 국토를 확장하겠다던 신 교수의 꿈이 무산된 것은 'IT 버블'이 꺼졌기 때문이었다.

분위기가 급랭하자 계약을 했던 사업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입주를 포기했다.

상담도 다 끊겼다.

먼저 입주해 사업을 시작한 사업자들도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다다월드 사이버 세상은 한순간 폐허로 변했다.

학교와 회사를 오가며 바쁘게 뛰어다녔던 신 교수는 교단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다월드가 실패한 또 다른 요인은 인프라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신 교수가 구상한 3차원 사이버 세상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초고속인터넷 전송 속도가 수십 메가(1Mbps는 1초에 1메가비트를 전송하는 속도)는 돼야 했다.

또 대용량 데이터를 신속히 처리하는 고성능 컴퓨터도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엔 인터넷 속도가 초당 1메가를 밑돌았고 컴퓨터는 다다월드 데이터를 처리하지 못해 늘 버벅거렸다.

다다월드에는 아직도 200여명의 사이버 시민이 거주하고 있다.

사이월드연방국에는 자유마을 행복마을 등이 있다.

거주자는 많지 않지만 이들을 통치하는 대통령도 있다.

연방국 초입에는 중앙정부청사가 있고 조금 더 가면 교회도 나온다.

시민들이 건설한 지하철도 있다.

요즘도 집을 짓겠다며 땅을 달라고 요구하는 시민이 있으나 신 교수는 더 이상 투자는 않고 이들의 움직임을 관찰만 하고 있다.

신 교수는 24일 "미국에 다다월드와 비슷한 세컨드라이프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2000년대 초 IT 붐이 꺼지지 않았더라면,지금과 같은 인프라가 갖춰져 있었더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다월드에 사업자들을 입주시켜 실제로 상거래가 이뤄지게 하려고 했는데 이런 구상이 나중에 지마켓과 같은 전자장터로 발전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