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How are you?와 Who are you?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클린턴에게 경상도식 표현으로 '이게 누꼬?'(Who are you)라고 말한 게 무슨 잘못이냐"고 반문했다는 농담 시리즈의 하나다.

클린턴을 동생 다루듯 했던 YS는 한때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도 했다.

당시 경제부총리를 지냈던 강경식씨는 외환위기를 회고하면서 "집에 불이 났는데 어떤 이웃도 도와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을 끄러 오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한국에 금융위기가 터진 것은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던 로버트 루빈이 "한국은 강제적으로라도 길을 들여야 한다"고 말한 1주일 후였다.

그해 외환위기가 터지기 정확히 한달 전 클린턴 대통령은 직접 YS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쇠고기 O-157사건을 조용히 덮어주면 안되겠냐"는 부탁의 전화였다.

그리고 한달 만에 다시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한국은 12월 초면 파산한다.

IMF와의 협상을 빨리 끝내라"는 독촉 전화였다.

외환위기 와중에 잠시 부총리를 맡았던 임창열씨는 나라가 부도나기 3개월 전인 그해 9월 미국과 자동차 협상을 가졌다.

임 장관은 자동차를 얼마라도 팔아달라는 미국측의 요구에 대해 "한국은 이제 미국과 이혼할 때가 되었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그렇게 큰소리를 쳤다.

그로부터 불과 2개월 후 임 장관은 금융위기 수습용 경제부총리가 되어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외환보유고가 텅텅 비어 일본으로부터 얼마간의 급전이라도 빌려보려는 다급한 발걸음이었다.

임 장관은 미쓰즈카 히로시 대장성 장관이 내미는 한통의 편지를 보고 빈 걸음으로 우중충한 대장성 빌딩을 빠져나왔다.

루빈 미국 재무장관이 일본 재무장관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미국은 한국 금융위기에 대한 일본의 대응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지원은 IMF틀 내에서 처리한다.

이 같은 방침에 협력해 달라"고…. 강경식 부총리가 말했던 불 끄러온 이웃이 없었다는 사연의 전말은 이런 것이었다.

이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미국은 일본의 불안정한 금융 체제를 걱정하고 있다."(그러니 네 일이나 잘 해!)

한국이 금융위기에 쓸려들자 일본은 엔화의 국제화를 위해 수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왔던 AMF(아시아통화기금) 창설안을 서둘러 백지화했다.

김영삼 정부가 여러차례 지지 성명을 냈던 바로 그 AMF였다.

그해 12월1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렸던 재무차관 회의에서 강만수 당시 재경원 차관은 어렵사리 류지민 중국 재무차관을 만났다.

거드름을 피우는 이 중국인은 "국민소득 600달러짜리 나라가 어떻게 1만달러 나라에 돈을 빌려줄 수 있겠습니까"라며 강 차관의 등을 돌려 세웠다.

불과 2,3개월 전만 해도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미국채를 거론하면서 "일본과 중국이 손잡고 미국을 혼내주겠다"(사카키바라 일본 대장성 차관)며 기세를 올리던 이웃들이었다.

소위 동북아 균형자론적 발상은 이미 그렇게 용도폐기된 상태였다.

중국은 홍콩이 금융위기로 빨려들자 장쩌민이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현찰 30억달러를 퍼부어 비행기와 컴퓨터를 대거 구매하면서 비위를 맞추었다.

장쩌민은 대학을 찾아가 엉덩이를 흔들며 춤도 췄다.

떠오르는 중국의 새 황제로도 불리던 장쩌민의 춤이라니….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몇 년이 지난 바로 지난달 백악관에서 역시 엉덩이를 흔들며 신나게(?) 춤을 췄다.

그는 선글라스까지 꼈다.

장쩌민을 그냥 베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상하이대학의 한 교수는 기자에게 '앞으로 30년간은 미국과 일본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말라'고 했다는 덩샤오핑의 유훈을 들려 주었다.

북한 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도 틀릴 수 있네 어쩌네 하는 논란이 뜨겁다.

실로 지도자의 덕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춤을 추며 상대의 비위를 맞추더라도 국민이 편안하면 그것이 전부인 그런 지도자가 그립다.

FTA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은 미국쪽에서 별 탈 없을 것이라고 알량한 잔머리를 굴린다면 정말 큰 오산이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