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의 대표적 원로 목회자인 강원용(姜元龍·86) 평화포럼 이사장이 자서전 '역사의 언덕에서'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해방 이후 현실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던 강 이사장은 최근 출간한 이 책에서 역대 대통령과의 인연 및 대화, 본인의 평가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 다음은 책의 주요 내용. "이승만 대통령은 권력욕과 거짓으로 가득찬 정략가였다. 이 대통령은 일경에게 잡힌 적이 없으면서도 자기의 손을 보여주며 '왜놈에게 붙잡혀 고문당한 손'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서양인 아내를 두고 있으면서도 이를 공산당의 모함이라고 일축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모든 것을 미리 구상하고 자기 식대로 해나가는 사람이었다. 특히 나는 박 대통령의 좌익 활동 전력을 알고 혹시 북한과 연계돼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가졌고 이를 당시 윤보선 대통령 후보에게 알려 대선의 이슈가 되도록 했다. 김신조 사건이후 그런 의심은 접었다. 그러나 유신 말기 이사장으로 있던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대대적인 탄압을 받는 등 박 대통령과는 길고 긴 악연이 이어졌다. 전 대통령은 초기만 해도 옳은 주장에 대해서는 쓸데없는 권위나 고집을 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1983년 아웅산 사태 이후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말만 하는 등 독단에 빠졌다. 노태우 대통령에게서는 총리직을 제의받기도 했다. 집권 초기 만났을 때 '민주화를 실현시킨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한번 입 밖에 꺼낸 말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중간 평가를 통해 여소야대 정국의 전환점을 마련하라고 충고했고 노 대통령도 전폭적인 공감의 뜻을 표시하며 투표일까지 상의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수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업적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머리가 좋은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처음부터 지나친 자신감을 갖고 있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자신이 못하는 분야를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나눠 맡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들로 행정부를 채운다는 인상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그의 앞날엔 맑음과 어둠이 교차한다. 그의 지지 세력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서두르지 말고 지지 세력을 넓혀 국민 대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