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 싱겁게 끝나는 분위기였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메르세데스 벤츠 슈퍼돔에서 4일(한국시간)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 슈퍼볼. 3쿼터 종료를 7분53초 남긴 시점까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는 볼티모어 레이븐스에 22점 차이로 지며 일방적으로 끌려다녔다.

긴장한 건 샌프란시스코 팬들뿐 아니었다. 텍사스와 어바인 사무실에서 각각 경기를 지켜보던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자동차 미주법인 마케팅 담당자들의 이마에도 땀이 흘렀다. 수백억 달러를 투자해 만든 슈퍼볼 광고의 효과가 반감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게다가 3쿼터 종료 13분22초를 남겨놓고 경기장 전기가 34분 동안이나 꺼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광고주들은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다.

하지만 전 세계 1억명이 넘는 시청자가 지켜보는 슈퍼볼은 역시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전이 경기 분위기를 바꿨다. 샌프란시스코는 전력이 다시 공급되자 잇따른 터치다운과 필드골로 순식간에 17점을 쓸어담으며 경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4쿼터 종료 9분57초 전 또 한번의 터치다운을 성사시키며 31-29로 볼티모어를 바짝 따라붙었다. 시청자들의 몰입도가 극에 달한 순간 화면이 바뀌고 기아자동차의 60초짜리 광고 ‘스페이스 베이비(우주에서 온 아기)’ 편이 흘러나왔다. 효과를 극대화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이후 볼티모어가 3점을 획득, 점수차는 34-29로 다시 벌어졌다. 경기 종료 2분 전. 이제 6점짜리 터치다운 외에는 샌프란시스코에 희망이 없는 상황. 엔드존에 바짝 다가선 샌프란시스코의 마지막 공격 순간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엔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2 광고였다. 영화배우 폴 루드와 세스 로건이 등장, 삼성전자 광고에 출연하기 위해 아이디어 경쟁을 벌이다 NBA 농구스타 레브론 제임스에게 결국 모델 자리를 빼앗긴다는 설정의 90초짜리 광고였다. 극적인 순간 손에 땀을 쥔 채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과 시청자들의 입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경기는 34-31, 볼티모어의 승리로 결국 끝이 났다.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슈퍼볼은 글로벌 기업들에는 치열한 광고전이 벌어지는 또 하나의 전쟁터다. CBS TV가 중계한 올해 경기는 30초짜리 광고 단가가 380만달러로 작년 350만달러보다 더 올랐다. 가수 싸이가 미국의 인기 스낵 브랜드 ‘원더풀 피스타치오’ 광고에 출연해 피스타치오로 분장한 댄서들과 ‘말춤’을 춰 눈길을 끌기도 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