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유죄가 확정됐다. 해당 판결이 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간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大法 “합병 당시 국민연금 부당 개입”

정부, 엘리엇과 '1조원 국제분쟁' 소송 불리해졌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4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문 전 장관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홍 전 본부장 역시 징역 2년6개월이 그대로 확정됐다.

문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당시 복지부 내에 외부 인사로 구성된 ‘주식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가 삼성 합병에 반대할 우려가 있다며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안건을 다루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를 받았다. 홍 전 본부장 역시 이 과정에서 투자위원들에게 합병 찬성을 지시해 국민연금에 거액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다.

하급심 재판부는 두 사람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했다고 판단해 각각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손해액을 산정할 수 없다며 홍 전 본부장에 대해 특경법상 배임이 아니라 형법상 업무상 배임 혐의를 인정했다. 대법 역시 “원심에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이 재판은 2017년 11월 대법원에 넘어간 지 4년5개월 만에 결론이 났다. 이에 따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온 두 사람은 곧 재수감돼 남은 형기를 채워야 한다. 두 사람은 2017년 1월 16일 구속된 후 대법원 심리가 길어지자 구속 취소 결정이 내려져 1년4개월 만에 석방됐다.

사모펀드-韓 정부 간 소송에도 영향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메이슨캐피털(메이슨) 간 ISDS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엘리엇과 메이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각각 7억7000만달러(약 9400억원)와 2억달러(약 24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2018년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메이슨이 한국으로부터 손해배상금을 받기 위해선 ‘청와대와 국민연금’ 그리고 ‘청와대와 삼성’ 사이의 두 가지 청탁 고리를 입증해야 한다. 2019년 8월 대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이에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두고 부정 청탁이 있었다고 판결했다.

이에 한국 법무부는 현재 ISDS에서 “국민연금이 당시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정부 지시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하는 가운데, 대법원에서 이와 반대되는 판결이 이번에 나온 것이다. 한 국제중재전문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합병 당시 국민연금에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정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재판이 ISDS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은 이전부터 제기됐다. 엘리엇은 문 전 장관·홍 전 본부장의 재판을 ISDS에 활용하기 위해 2020년 1월 정부에 해당 재판에 대한 수사 기록과 1·2심 공판 자료의 제출을 요구했다. 문 전 장관·홍 전 본부장도 대법원에 “엘리엇이 제기한 ISDS를 판결 과정에서 고려해 달라’는 상고이유보충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대법원 판결이 오래 걸린 이유를 두고 일각에서 “엘리엇과 한국 정부 간 ISDS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정부로서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개인의 국내법상 형사 책임을 물은 것이고, ISDS는 국가의 국제법상 책임 문제”라며 “법리가 전혀 달라 엘리엇·메이슨 ISDS에 불리한 영향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